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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가 쪄 낸 고고마가 귤보다 더 달에

이명재의 충청말 이야기 (27)

2019.11.26(화) 23:50:1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엄니가 쪄 낸 고고마가 귤보다 더 달에 1



표준어에선 달다>달네>다네
충청말에선 달다>달네>달에


‘고고마를 먹다가 귤을 먹으니께 고고마가 더 달에.’

오늘도 엄니에게 배운다. 일요일이면 엄니 품에 든다. 6남매를 다 떠나보내고 홀로 사시는 엄니는 손가락을 꼽는다.

일요일은 작은 아들이 다녀가는 날이다. 구순의 세월이 꿈틀거리는, 주름진 얼굴이 웃음으로 휘날리는 날이다.

엄니는 내장탕을 끓여내셨다. 아들이 좋아한다고 장에 나가 사오셨다. 굽은 등을 보이시곤 부진부진 당신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긴다. 작은 밥그릇을 두고 큰 그릇에 밥을 푼다. 주름진 당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다.

엄니 마음을 흠뻑 들이킨 일요일 저녁이면 나는 맹꽁이가 된다. 둥둥 배북소리가 꺼지기도 전에 엄니는 간식을 들고 오신다. 감, 귤, 찐 고구마다. ‘하이고 엄니, 아들 배 터져 죽어요. 들이지 마세요. 들이지 마세요.’ 그런 소린 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안 들일 엄니가 아니니까.

간식 시간은 엄니의 강연을 듣는 시간이다. 쟁반에 소복한 간식을 먹는 시간이면 나는 귀를 기울인다. 엄니는 지난 한 주일의 일상을 들려준다. 실오라기 하나 놓치지 않는다. 말이 끊어지면 내가 묻는다. 내가 묻는 레퍼토리는 늘 그렇다. 엄니의 추억이다.

내 물음에 따라 엄니는 푸른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아픔의 전쟁 시절로 돌아간다. 추억 속으로 들어간 엄니는 옛 충청의 사투리를 길어 올린다. 나는 받아 적는다.

그런데 오늘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잊었던 사투리를 들춰낸다. 귤을 드시던 엄니가 고구마를 입에 물고 불쑥 ‘달에’를 일러주신다. ‘달에, 달에.’ 흔히 듣던 말인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말이다. 나는 메모장에 ‘달에’를 적는다.

“엄니, 시큼헌 귤 먹다 감자 먹으니께 더 달쥬?”
“이, 고고마가 더 달어졌어.” 때론 시절이 뒤바뀐다. 나는 종종 고구마를 감자라고 한다. 내 어릴 적 말이 튀어나는 것이다. 엄니랑 얘길 나누다 보면 흔히 그렇다. 그렇지만 엄니와 내겐 상관없는 일이다. 고고마든 감자든 다 알아듣는다.

나는 돌아와 ‘달에’를 정리한다. ‘달에’는 ‘다네’의 충청말이다. ‘달다’란 말에 종결어미 ‘-네’가 붙으면 ‘달네’가 된다. 그런데 ‘달네’는 발음이 불편하다. 표준어에서는 말하기 쉽게 ‘달’의 ‘ㄹ’를 떼어낸다.

그래서 엄니의 말을 표준어로 바꾸면 ‘고구마가 더 다네’가 된다. 이에 비해 충청말에서는 ‘네’에서 ‘ㄴ’을 버린다. ‘달에’, 엄니가 되돌려준 내 충청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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