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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같은 금강변 닥실나루에 터 잡은 유서 깊은 닥실마을

2019.10.28(월) 15:52:37 | 금산신문 (이메일주소:gsnews4700@naver.com
               	gsnews4700@naver.com)

닥실마을 전경.

▲ 닥실마을 전경.


닥실마을은 서쪽으로는 소사 봉이 우뚝 서서 그 여맥으로 잔잔한 산악지대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금강이 북쪽에서 서쪽으로부터 흘러가는 봉황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넓은 들을 조성하여 산악지대 절반과 들이 절반인 비교적 완만한 농촌지대의 표본 같은 지역에 저곡리가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천내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제원리와, 남쪽으로는 금성리와 제원리, 남쪽으로는 금성리와 용화리 그리고 북쪽으로는 대산리와 경계를 나누는 지역이다.

닥실마을 입구에 조성된 상질물.

▲ 닥실마을 입구에 조성된 상질물.


인류의 정착은 선사시대로 본다. 백제 때는 이성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는 처음에 부리현에 속했다. 옛날부터 금강변에 위치한 저곡리는 남쪽에서 또는 북쪽에서 왕래하는 큰 길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진격해 오는 , 그 잔인한 발굽 아래 마을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진격해오는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닥실나루에서 또는 저곡산성에서 많은 의병과 관군이 끝내 저항하다가 전사하는 전쟁터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끝내는 금산군수 권종이 왜군을 막다가 순절하는 그 애국의 장소가 저곡리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닥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닥실 또는 저곡이라 하였는데 가호수는 96호이며 인구는 334명이다.

소사봉으로부터 뻗어오는 산세가 풍수적으로 금계포란형의 길지에 위치하는 곳으로서, 고려 말 야은 길재의 부인 아주신씨의 묘소가 이곳에 자리하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그래서일까 외부 도로변에서 마을을 쉽게 볼 수 없어 자칫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금강생태학습장으로 변모하였지만 예전엔 초등학교가 자리할 정도였다.

생태과학체험관.

▲ 생태과학체험관.


어느 농촌이고 그러하듯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닥실마을도 한때 침체의 기로에서 폐교(금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농촌체험마을과 금강생태체험학습장으로 지정되어 활발히 운용중에 있으며, 마을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다소 아쉬운 것은 마을의 전통가옥에 대한 활용도와 상호 연계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뒤따른다면 강촌의 체험 장으로서 어느 곳보다 경쟁력이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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