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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안의 사찰 은석사

북면 은석사 이야기

2019.09.25(수) 14:52:31 | 가람과 뫼 (이메일주소:caption563@naver.com
               	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은석산 안내
▲은석산 안내
 
안내찬
▲임도 안내
 
은석산은 천안의 동남쪽에 자리한 산으로 금북정맥의 줄기인 엽돈재에서 남향한 맥기가 병천과 북면을 가슴에 안고 있는 형국이다. 그 은석산의 중턱에 지금은 단촐한 모습이지만 천년고찰 은석사가 자리하고 있다.

은석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방법은 어사 박문수 제실 뒤로 난 임도를 따라 은석사로 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기술교육대 정문 맞은편에 있는 동네를 지나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을 택해 임도를 따라 약 3.3km 정도 산 능선을 타고 가는데,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탁 트인 시야와 가을이 오기 시작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전경 ▲전경

은석사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나 사료의 미비로 인하여 그 사실이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절집 주변에서 발견되는 와편등을 통하여 현재 봉안되어 있는 목조여래불의 조성 시기인 조선시대보다 훨씬 오래되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보광전 ▲보광전
 
현존하는 법당은 보광전과 삼성각이 있으며 특히 보광전 내의 목조여래좌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조여래좌상은 몸에 비하여 큰 사각형의 얼굴에 근엄하지만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좁은 어깨에 비하여 상체가 크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두 귀는 크고, 목은 짧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선정인에서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항마촉지인은 결가부좌한 좌상에서 주로 취하는 수인으로 성불을 방해한 마왕을 물리친 수인이며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표현하는 수인이라 한다. 불상에 표현된 공통된 특징이 17세기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목조여래좌상
▲목조여래좌상
 
지장도
 
천안의 사찰 은석사 1
 
법당에 있는 아미타극락도는 목조여래좌상의 후불탱화로 태화산 마곡사 부영암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많은 세월 탓에 훼손은 되었으나 남아 있는 사료에 의하면 철종 12년에 제작된 것이라 한다.

오가는 이 없는 적막한 산중 절집 한구석 느티나무 한켠에 문인석이 객을 맞으며 퉁방울 만한 눈을 부라리고 있다. 어느 누군가의 묘를 지키고 있어야 할 문인석이 길을 잃고 이곳에 있으니 안쓰러운 마음이 솟는다. 조금 우스꽁스러운 모습의 문인석을 보고 있자니 세상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도 싶다.
 
삼성각 ▲삼성각
 
문인석
▲문인석

절집 뒤편 삼성각이 높다라니 자리하고 있다. 삼성각에는 독성, 산신, 칠성신을 모시고 있다.
이따금 목청 높여 짖어대는 누렁이가 산사의 고요를 깨트린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낭랑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가슴에 젖어든다.
 
천안의 사찰 은석사 2
 
바람 한 점 없는 산중에 우두커니 앉아 나른한 몸을 내려 놓고 속세에 찌든 때를 훌훌 터는 것도 좋을 듯싶다. 어느새 성큼 다가선 가을이 발끝에 서성이고,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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