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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안의 사찰 용화사 이야기

운봉산 용화사

2019.09.16(월) 19:49:41 | 가람과 뫼 (이메일주소:caption563@naver.com
               	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용화
▲용화사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178에 소재한 용화사는 용연저수지 근처 병천 가는 옛길 인근인 운봉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용주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다. 숲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넓은 주차장과 아담한 절집을 만날 수 있다.

좌측으로는 요사채가 있고, 우측으로는 약사불과 연꽃을 심은 연못이 있으며, 그 뒤편으로 석조여래입상과 나한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산기슭 쪽으로 대적광전과 대웅전이 있고, 두 법당 사이에는 삼층석탑이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덩그라니 서 있다. 
 
전경 ▲전경
 
용화사에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화강암을 깎아 조성한 석탑과 입상이 있는데, 특히 여래입상은 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그 크기가 약 4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이다. 머리 위에 육계는 둥글고, 나발은 많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양각되어 있고, 우뚝한 코와 입가의 작은 미소가 자애스럽고 중후한 것이 푸근하며 인자한 모습이다.

법의는 통견이고, 오른쪽 옷깃은 왼쪽 어깨 위로 둘러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다. 수인(手印)의 형태는 주로 입상일 경우에 많이 표현되던 통인(通印)으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진 '시무외인'으로 한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며 손끝을 위로 향하였다. 다른 한 손은 손을 펴 앞으로 내밀며 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는 '여원인'인데,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소원을 이뤄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수인이다.

여래입상의 주위에는 배례석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이 자리한 것으로 미루어 아주 오랜 옛날에는 석불을 보호하던 보호각이 있었지 않나 싶다.
 
석조여래이뵤ㅏㅇ
▲석조여래불입상 
 
안내문
▲안내문
 
석조여래입상 옆에는 나한입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수법은 여래입상과 유사하나 크기는 3m 80cm 로 약간 작으며, 연화대좌 위에 서 계시다. 나한입상은 본래 이곳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초에 인근 도로 공사 중 발견되어 용화사로 모셨다 한다.

나한입상의 수인(手印)은 법륜을 돌리는 수인이라는 뜻으로 오른손으로는 설법인을 맺고, 왼손으로는 그것을 받치는 듯한 형태를 한 '전법륜인'으로서 부처께서 처음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다섯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을 하고 계시다. 수인(手印)은 부처의 깨달음이나 서원(誓願)을 나타내는 여러 형태의 손모양을 말한다.
   
나한입상
▲나한입상
 
석불
▲석불

석조여래불 앞에 자리한 석좌불은 안타깝게도 불두가 유실된 듯하다. 잠시 인사를 여쭌 후 발길을 법당으로 향하였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법당을 이야기하고,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말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두 칸으로 팔작지붕을 하였고 문은 사분합문을 하였다. 비로나자불을 주불로 모신 대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으로 대웅전보다 웅장하며, 팔작지붕을 하고 용모양의 치미로 장식을 하였다. 법당 안 부처를 모신 위로는 닫집을 만들어 장엄함을 더하고 법당을 가로지르는 용 조각은 반야의 지혜로 생사의 윤회를 벗어난 중생이 부처의 인도를 받아 피안의 세계로 떠나는 반야용선을 은연중 연상케 한다.
 
대웅전
▲대웅전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대적광전 ▲대적광전

법당을 한 바퀴 돌아 경내로 나서니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세월의 부침 탓인지 깨지고 부서져 너무 큰 상처를 입고 있다. 부분 부분 보수를 하였으나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영 낯설기만 한 것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석탑의 형식은 통상 정방형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여 기단과 탑신 그리고 상륜부로 형성이 된다.

탑의 옛 형태를 참고하였는지 복원된 형태는 기단 없이 지면 위에 바로 조성하였던 백제탑과 달리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형식을 하고 있다. 지대석 위에 이층기단을 설치하였고 각면의 모서리에는 우주석이 있으며, 우주석과 우주석 사이에는 탱주석을 조성하여 목탑에서 흔히 보이는 기둥을 연상하게 하였으며, 낙수면에는 옥개석이 5주로 조성되어 있다.
 
삼층석탑
▲삼층석탑

마당 한 켠 배롱나무꽃이 화사하다. 찾는 이 없는 절집은 적막한 것이 고요하기만 하고, 이따금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만이 가을의 전령인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흡사 절집의 고요를 깰까 조심스러워 발걸음을 조신하게 옮겼다.

어느새 높아진 하늘이 눈부시다….
 
풍경
▲경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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