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

부정(不淨)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문화장치

도서(島嶼)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 ②당제와 해막

2019.07.13(토) 22:33:4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장고도의 해막(1973, 故박계홍 교수 촬영)

▲ 장고도의 해막(1973, 故박계홍 교수 촬영)


 

 

섬마을에서는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당제(堂祭) 엄격하게 지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만삭의 임신부는 당제 기간에 마을 안에서 출산할 없었다.

기간에 출산은 피를 보는 것으로, ‘산 부정’이라고 여겨 금기시되었다.

출산의 ‘산 부정’과 초상의 ‘죽은 부정’은 신령이 노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제를 앞두고 출산을 하면 당제를 지내지 않거나 미루고, 대신 책임은 아기에게 전가한다.

‘당제를 깨친 아이’라고 부르며, 아이는 일생동안 () 없이 생활하게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이유로 도서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마을에 해막(解幕) 존재했다.

섬에서 육지로 제물을 구입하러 장배가 떠나면,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는 서둘러 해막(解幕)으로 피신했다. 해막은 피막(避幕) 또는 산막(産幕)이라고도 불렸다. 주로 마을 뒤편이나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장소에 별도의 시설을 마련한다.

마을마다 형태는 다양했다. 외연도의 경우는 방과 부엌이 각각 칸씩 있는 오두막이다. 흙벽에 양철로 지붕을 얹고, 바닥에는 온돌을 깔아 놓았다.

섬의 당제는 정월 초순경에 치러졌다. 섣달이나 정월에 태어난 아기는 모두 별도로 지어진 해막에서 낳았다. 해막의 풍습은 당제의 소멸과 함께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사람이 삶을 살다보면 인생의 모든 일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사람의 나고 죽는 것은 본인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해막은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당제를 정성껏 지내려는 마을주민이 부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문화장치가 아닐까 한다.

/민정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기획부장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