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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

신례원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산 동학농민군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⑨아산의 동학농민혁명

2019.07.13(토) 20:59:0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아산지역 동학농민군 위령제

▲ 아산지역 동학농민군 위령제


 

 

 

아산시는 온양·아산·신창이 합쳐진 곳이다. 아산은 내포지방의 하나로 아산만이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와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고, 평택과 천안에 접해 있어 육상교통도 편리하다.

아산의 대표적인 동학접주로 안교선이 있다. 안교선은 유성 출신으로 아산에 정착한 이후 동학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아산포 대접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남벌원(南筏院)에서 성재식, 최재호와 함께 처형당했다. 1883 6 공주접이 자금을 마련하여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경주판 동경대전 발문에 안교선이 충청도 공주 도인 윤상오와 함께 실무를 맡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하면 아산지역에는 오래전에 동학이 전래되어 있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조직력을 갖추고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고 만하다.

아산지방은 동학농민혁명 직후 발생한 청일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전라도지방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청군을 불러들였다. 청군은 1894 6 내포지방인 당진 내도를 거쳐 아산 백석포에 상륙하였다. 청군이 내도와 백석포에 상륙한 이후 아산지방과 백성들은 청군의 식량과 말먹이를 대기 위해 농사지을 종자까지 빼앗겼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청군을 쫓으면서 아산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일본군은 아산을 점령하고 청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관리와 백성들을 구타하고 관아를 불태웠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던지 아산현감이던 양재건이 위태로움을 느끼고 달아났을 정도였다.

내포지방에서 동학농민혁명이 터지자 아산지방 동학농민군도 10 5 기포하였다. 아산포 대접주 안교선이 덕산포 박인호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아산관아를 들이쳐 점령하고 무기를 탈취한 것이다. 아산관아에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한 아산포와 덕산포의 동학농민군은 내포지방으로 이동하여 동학농민군의 주력이 되었다.

아산지방 동학농민군이 내포지방 동학농민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것은 신례원 전투이다. 내포지방 동학농민군이 면천 승전목 전투에서 승리하고 신례원에 이르렀을 신창의 김경삼, 곽완, 정태영, 이신교 등이 이끄는 아산지방 동학농민군이 대거 합류하면서 내포지방 동학농민군은 신례원 전투에서 승리할 있었다. 이렇듯 아산의 동학농민군은 내포지방 동학농민혁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진시동학농민혁명승전목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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