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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아리랑’을 노래하다

충남인 - 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회장

2018.08.06(월) 02:03:4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아리랑’을 노래하다 1


남은혜 명창사진 앞줄 왼쪽 다섯 번째과 공주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2017년 9월 17~18일 양일간 러시아에서 개최된 제2회 사할린아리랑제 초청공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남은혜 명창<사진 앞줄 왼쪽 다섯 번째>과 공주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2017년 9월 17~18일 양일간 러시아에서 개최된 제2회 사할린아리랑제 초청공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4년 발매한 남은혜 아리랑 음반 표지

▲ 2014년 발매한 남은혜 아리랑 음반 표지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아리랑’을 노래하다 2


충남은 얼마 전 마곡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곳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기쁨을 누렸다.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갖게 된 이때, 충남의 소리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당당히 이름 올리고 있는 공주아리랑을 떠올려본다. 2012년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될 때, 정선·진도·밀양아리랑 등과 공주아리랑이 나란히 이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공주아리랑의 발굴·확산을 위해 노력해 온 남은혜 명창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편집자 주>

 

 

옛 것이면서 오늘의 것

하나이면서 여럿인 것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민요로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들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다.

 

아리랑이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락(Rock), 재즈(Jazz) 등 다양한 서양음악 양식을 받아들여 재탄생되는 모습을 두고 아리랑 연구자들은 “아리랑은 옛 것이면서 오늘의 것이요, 하나이면서 여럿인 것”이라 평한다.

 

공주아리랑보존회장 남은혜(61) 명창은 누구보다도 아리랑의 이런 가치를 꿰뚫고 전통의 계승과 창조적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아리랑은 공주아리랑”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남 명창은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이천에서 성장했다 20대 초반 소릿길에 들면서 서울 유학길에 오른 ‘위쪽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30여 년 전 공주 출신의 남편을 만나 자연스레 공주에 정착하게 되고, 지역에서 새로운 소리인생을 펼쳐 가던 중 촌로들이 부르던 ‘공주아리랑’의 존재를 알고 이를 자신의 음률로 되살려 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아리랑 속에 되살려 동학농민운동의 내력이 깃든 ‘우금티아리랑’이나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항쟁했던 만경 노씨 삼형제와 영규대사의 충성을 기리는 ‘의병아리랑’ 등을 새롭게 창작해 부르기도 했다.

 

슬픈 친정 가족사에 바탕한 ‘북간도아리랑’과 우즈베키스탄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애환이 담긴 ‘치르치크아리랑’ 등을 창작해 공연하면서 재외동포의 삶과 한국사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원 없이 노래하는 삶 꿈꿔

父의 흥·母의 한 녹여내

 

남 명창은 1958년 경기도 여주 시골마을에서 7남매 중 여섯 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들이 그랬듯 그의 아버지도 가부장적이고 엄했으나, 시조창과 퉁소 불기를 좋아하셨고 늘 사랑의 손님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등 흥이 많고 손님이 많았던 모습이 어슴푸레 기억난다. 그에 반해 남편과 친정아버지의 술김 약속에 의해 13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뻘 남편을 만나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자주 먼 하늘을 보며 한숨짓다가 구슬프게 ‘아리랑’이나 ‘한오백년’을 읊조렸다.

 

두 노래의 성격은 비록 달랐지만 부모님의 노랫소리를 항시 듣고 자란 남 명창은 어려서부터 그저 ‘원 없이 노래만 하며 살고 싶은 삶’을 꿈꿨다.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었던 남 명창은 19살 되던 해  KBS TV 전국콩쿨대회’에 출전해 신민요 <오돌또기>를 뽑아냈다. 비록 수상자 명단에 들진 못했지만 이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안비취 선생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이후 안 선생의 주선으로 묵계월 선생을 만나 선생의 집에 기거하며 소리를 배웠다. 지척에서 묵 선생을 모시며 소리를 배우던 22살 무렵, 그는 계속된 연습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소릿길을 포기할 뻔 한 위기가 있었다. 좌절하고 절망하며 이천의 가족들 옆으로 돌아가 3개월여를 노래를 하지 않고 목을 쉬자 비로소 다시 소리가 틔었다.

 

목소리가 나오자 곧 다시 묵 선생의 집에 들어가 묵묵히 소리를 배운 지 10년 만에 경기민요 전수자가 되고, 이후 삶터 공주와 공연과 배움을 위해 서울을 오가는 여정 끝에 2002년 마침내 경기민요 이수자로 지정됐다.

 

아버지의 흥과 어머니의 한이 적절히 녹아든 남 명창의 목소리는 안비취, 묵계월 두 선생을 만나 꽃 피우며 ‘남은혜의 노래’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외로운 길의 ‘추진력’ 얻어

 

남 명창에게 반평생을 훌쩍 넘긴 소릿길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는지를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남 명창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목소리는 먹먹해졌다.

 

북간도와 중앙아시아, 사할린 동포들에게 아리랑은 ‘정체성의 기억’이자 ‘조국에의 그리움’이었고, 남 명창으로서도 만나본 적 없는 ‘외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자 평생 북간도로 떠난 가족을 원망하며 그리워했으나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친정어머니의 슬픔’의 토로였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사비를 들여 해외로 나갈 만큼 남 명창은 무대의 크고 작음이나 유명세를 따지지 않고 그저 아리랑의 다양한 모습을 알리기 위해 달려왔다.

 

그런 남 명창에게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가 발굴하고 계승해 온 공주아리랑이 당당히 보존·계승 대상으로 이름 올린 일은 한평생의 손꼽을 보람이자 성과다.

 

아직 공주는 물론 충남에서도 공주아리랑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공주아리랑을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 공주와 충남을 알릴 수 있기를 바라는 그에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커다란 추진력이 됐다.

 

여기에 힘입어 남 명창은 2014년 공주아리랑과 북간도아리랑을 타이틀로 내세운 2장의 음반을 묶어 냈다. 첫 번째 음반은 ▲북간도 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 ▲구아리랑 ▲긴아리랑 ▲정선아리랑으로 구성했고, 두 번째 음반은 ▲공주아리랑(-엮음-자진소리) ▲신공주아리랑 ▲산아지 ▲본조아리랑 ▲아리랑 산천에 ▲한오백년으로 구성했다. 음반 설명에서 각 노래의 가사는 물론, 아리랑의 의미와 남 명창의 소리인생을 국문·영문·중문·일문으로 실어 아리랑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길을 뒷받침했다.

 

남 명창은 제2의 고향 공주에서 자신의 소리와 공주아리랑을 계승하길 꿈꾼다.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뮤형유산 등재는 그가 외로운 길을 지속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창조적 확산 길 열어

후배의 디딤돌 놓을 것

 

전통문화나 예술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 명창도 두 방향의 고민을 지속한다. 하나는 전문가의 영역에서 자신의 계보를 잇고 공주아리랑을 이어갈 제자를 육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적 영역에서 공주아리랑을 알려 일상 속 문화로 아리랑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지역의 태봉초등학교와 북중학교에서 방과후수업의 일환으로 민요를 가르친다. 재주 있는 이가 있다면 장학생으로 삼아 길을 터 주고 싶다는 말에는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의 배려가 느껴졌다.

 

한편 공주아리랑보존회 사무실이나 공주문화원 등에서 이뤄지는 민요 강습에는 상대적으로 연세가 있는 인근 주민들이나 읍면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민들이 주로 참여한다.

 

남은혜를 위해서가 아닌, 공주아리랑과 공주의 문화를 위한 체계적 지원·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싶은 것은 남 명창의 남은 여정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스스로는 어렵게 걸어온 길이지만 앞으로 걸어올 누군가는 자신이 터놓은 좀 더 쉬운 길을 가도록 디딤돌이 되겠다”는 다짐이 인상깊다.

 

남 명창은 매년 삼일절이면 지역의 애국지사와 의병들을 기리며 ‘공주아리랑제’를 개최한다. 공주아리랑에는 백제의 역사와 정신은 물론 충청인과 공주 지역민의 심성이 어우러져 있기에 이를 기려 삼일절을 행사일로 택했다는 그의 말에서 공주와 공주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올해는 공주아리랑보존회가 6 1일 의병을 날을 맞아 ‘공주의병아리랑제’를 주관하면서, 여러 차례 지역을 답사한 끝에 창작한 소극 ‘함성!공주의병아리랑’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정서에 녹아들 수 있는 노래를 할 것”이라고 말한 남 명창의 목소리를 올 가을 여러 무대서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9 22일에 예정된 백제문화제 폐막식 무대와 10월 중 개최될 공주아리랑경창대회 등은 공주아리랑과 남 명창의 노래를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매 무대마다 관객과 공연의 성격을 고려해 좀 더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남 명창의 열정이 널리 충남인의 마음을 움직여 객석을 메우길 기대해 본다. 

●문의: 사단법인 공주아리랑보존회 041-854-9933

●주소: 공주시 무령로 250-1 2

/손유진 syj0319@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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