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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전통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충남인 - 우리그림제작소 류재민 대표

2018.07.17(화) 08:44:29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전통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1



세상의 눈보다 꿈꾸는 대로
‘온전한 내 작품 만드는 길’
 
발전하고 앞으로 나가며
지역과 공존하는 삶 꿈꿔


‘배첩(褙貼)’이란 ‘뒷면(背)에 옷()을 입힌다(貼)’는 뜻으로 그림이나 글씨 등 서화의 뒷면에 종이를 덧붙여 두루마리·족자·병풍·책·첩 등의 다양한 형태로 꾸미는 일을 가리킨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한 배첩을 업으로 삼아, 스스로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부여에 정착한 한 우리그림제작소 류재민 대표를 만나 보았다. <편집자 주>
 
부여는 고향 진주와 닮아 있었다. 논개의 혼이 잠든 남강이 흐르는 진주의 역사와 낙화암에서 산화한 궁녀들의 넋이 새긴 백마강 흐르는 부여의 역사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주와 닮은 부여는 ‘우리 것’에 끌린 청년의 발길을 붙잡았다.
 
류재민(30) 대표를 만난 곳은 부소산성과 정림사지를 잇는 삼거리 초입의 작업실에서였다. 지난 2016년 말, 부여군상권활성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을 통해 마련한 작업실 ‘우리그림제작소’의 이름에는 류 대표의 여정과 지향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그림으로 형상화해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의 전 과정.
 
그도 처음부터 배첩을 업으로 삼겠다는 각오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 류 대표도 보통 청년들처럼, 세상의 눈을 적당히 신경 쓰며 성적에 맞추어 입학한 대학생활에 회의와 방황을 겪었다.
 
앞날에 대한 고민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으로 살고 있으면서, 우리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낳았고, 그 답을 전통에 대한 관심에서 찾았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존재를 알게 된 류 대표는 어릴 때부터 소질과 관심이 있었던 적성을 살려 전통미술공예학을 전공하게 됐다. 전통회화를 공부하며 ‘우리 것’에 대해 알아가는 듯 했지만, 관심이 커질수록 새롭게 ‘온전한 내 것’에 대한 갈증이 다시 생겨났다.
 
캔버스나 두꺼운 도화지에 그리는 서양화와 달리 얇디얇은 화선지에 그려 내는 전통회화는 항상 배첩을 통해 족자나, 액자, 가리개, 병풍 등으로 가공되어야만 완성되었다. 그런데 배첩 과정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다 보면, 비단의 색상은 물론 디자인, 크기, 소재 등을 모두 표구사에서 해주는 대로 받아야 했기에 완성된 결과물이 온전한 내 작품이 아니란 점이 류 대표를 자극했다.
 
마침 동 대학 전통문화교육원에서는 문화재수리자 양성과정을 운영했고, 그 과정 안에 배첩과정이 있었기에 류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교육원 배첩심화과정을 이수했다. 배첩을 배울수록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만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공부를 하고 있는 동학(同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이왕이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면서 부여군의 지원에 힘입어 우리그림제작소를 연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워낙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전통회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물론, 배첩이란 작업도 가성비에서 서양식 액자나 표구에 밀려 외면 받다 보니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어서 시작한 배첩의 길도 쉽지만은 않다. 그에게 배첩은 말 그대로 업, 생계와도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배첩은 기다림입니다. 풀을 쒀서 식히고, 풀을 삭히고, 작품을 배접해서 말리고, 비단을 배접해서 말리고, 이어 붙여서 말리는 과정이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2주에서 한 달은 걸립니다. 게다가 중간에 조금만 허투루 작업하면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죠. 그렇게 기다리는 과정들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날만큼 지나야 완성품이 나오는 것이 배첩입니다”라고 하며, 배첩 과정에서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고객들이 생각하는 시간과 그가 필요로 하는 시간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 것이 배첩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한다. 기다림과 묵힘의 시간은, 요즘 세상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류 대표에게 보람된 시간은 일반 고객들이 배첩을 알고 찾아줄 때이기도 하지만, 학교의 후배들이 졸업작품을 준비하며 선배인 그에게 배첩을 부탁할 때라고 한다. 일정을 맞춰야 하는 급박한 작업인 만큼 며칠 밤을 새워 작업을 진행하면서 학생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어서이다.
 
현재 부여에서는 유일하게 류 대표만이 배첩 작업을 하는지라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박물관이나 문화재 관련 업체 등에서 자문을 하거나 작업을 의뢰하기도 한다고. 아직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말하는 류 대표지만, 조금씩 배첩에 대해 알아주고 작업실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다양해질수록 뿌듯함이 느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부여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중인 ‘고려건국 1100주년 기념 특별전 개태사-태평성대 고려를 열다’ 전시와 관련해 태조 현릉(顯陵)의 호석(護石)에 새겨진 십이지상의 탑본을 의뢰받기도 했다. 입체감 있는 부조로 된 십이지상 탑본을 위해 학생의 자세로 돌아가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전화로 문의해 가며 진행한 작업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한다.  
 
스스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고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다고 말하는 류 대표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과 우리그림제작소를 알리는 일을 피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처음 전통을 공부하고 배첩을 시작할 때의 결심처럼, 전통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널리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여군에서 진행하는 백제문화제나 사비야행 등에 참여해 체험부스를 열고 방문객들과 소통하기도 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방과후강사로 나가 학생들에게 전통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으로 작업과정과 결과물을 알리며, ‘요즘 사람’들의 소통 방식으로 배첩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전통을 계승하며 업으로 삼아 살아가지만, 전통 속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과 상생·공존의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류 대표의 모습에서 ‘배첩’의 미래를 새롭게 읽어볼 수 있다.
●주소: 충남 부여군 석탑로 76(2층) 
● 문의: jamcat@daum.net
● 인스타그램 : 우리그림제작소(@jammellis)·Instagram
/손유진 syj0319@korea.kr

류재민 대표가 배첩 작업을 한 족자작품이 전시된 모습

▲ 류재민 대표가 배첩 작업을 한 족자작품이 전시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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