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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일본 황실 보물창고에 가득한 백제 유물들

일본속 백제이야기(4)-쇼소인(正倉院)

2016.09.03(토) 23:23:3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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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황실보물창고에가득한백제유물들 1


일본
나라의 쇼소인은 세계 현존의 가장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관리하던 고대 보물창고였다.

 

 

나라시대(710~794) 당시 최대 국책사업이던 도다이지를 완공하고 세상을 떠난 쇼무(聖武)천황의 49 , 아내인 고묘(光明)황후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유품 600 점을 사찰에 헌납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많은 귀중품들이 헌납되면서 모두 보물이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무려 9천여 점에 달하는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 쇼소인에 소장되어 있는 한반도계 보물 가운데 백미는 적색 옻칠장에 들어 있던 바둑 도구이다.

 

쇼소인의 보물목록집인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에는 ‘백제 의자왕이 내대신(內大臣)에게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보물 가운데 유일하게 유래를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개로왕(蓋鹵王) 고구려의 승려인 도림(道琳)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백제문화가 일본에 전파될 바둑도 함께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후 의자왕이 일본 최고 권력자에게 보낸 최고급의 바둑 도구는 당시 일본 조정에서 커다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 적색 옻칠장은 남아있지 않지만 바둑판, 바둑돌, 바둑돌을 담은 은평탈합자(銀平脫合子) 보존되어 있다.

 

먼저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이라는 불리는 바둑판은 전체 틀을 소나무로 만든 다음 흑칠을 하고, 위에 1 정도의 두께로 자단목판을 덧붙였다.

 

바둑판의 가로·세로선과 모서리, 다리의 도려 부분은 상아를 사용하여 처리하고, 옆면은 상아와 함께 회양목, 흑단 등을 재료로 목화기법(木畵技法:목제품 표면에 원하는 문양을 파고 그곳에 색이 다른 목재나 상아, 금속, 구슬 등으로 상감하여 장식하는 기법) 이용하여 인물과 동식물, 수렵모습을 표현하였다.

 

상판 17개의 화점 또한 목화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상아로 5개의 꽃잎을 표현하고 안쪽에 금가루를 수지와 섞어 채워서 꽃가루를 연상케하는 화려함을 더하였다.

 

바둑판의 측면에는 한쪽을 열면 상대쪽도 동시에 열리는 서랍이 장착되어 있다.

 

각각 거북이와 자라모양의 용기가 달려있는데 상대방의 잡은 돌을 넣는 곳으로 추정된다. 모두 전체적으로 옻칠을 하였고 머리와 손에는 금박을 입혔다. 거북이의 귀갑문양의 경우는 은선으로 상감하여 표현하였다.

 

바둑돌을 담았던 은평탈합자는 노송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상판 또는 하판과 측판이 만나는 곡면 부분을 지름이 다른 6개의 고리를 따로 만들어 겹쳐서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상판과 측판에는 은을 얇게 두드려 문양을 재단한 , 옻칠한 면에 접착시키고 위에 다시 옻칠을 하여 고정시킨 다음 곱게 다듬어서 칠한 표면이 평평해지면서 은편무늬가 드러나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은평탈합자는 암수 마리의 앵무새를 새긴 , 코끼리 모양을 새긴 모두 4종류가 있다. 안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상아 바둑돌과 상아를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여 화려하게 장식한 종류의 바둑돌이 각각 담겨져 있다.

 

한편 최근 금은귀갑기국감(金銀龜甲碁局龕) 의자왕이 보낸 바둑판을 넣은 상자였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가 있다.

 

기국감의 전체 틀은 바둑판과 마찬가지로 소나무로 만들어졌고, 표면 전체에 상아로 귀갑문양을 만든 다음 문양 내부는 옻칠을 금·은박을 이용하여 꽃모양의 무늬를 장식하였다.

 

마지막으로 위에 소나 말의 발톱으로 귀갑모양의 투명하고 얇은 판을 만들어 덮어 원래의 색채감이 1,400 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쇼소인의 백제 보물들은 유구한 세월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탄성을 자아낼 만큼 수준 높은 공예미를 자랑하고 있다.

 

백제의 뛰어난 공예기술과 미적감각은 백제 건국 이래 발전·계승되어 사비기에는 절정기에 이르게 된다.

 

쇼소인 보물들에 보이는 상감기법은 일찍이 칠지도에서, 옻칠 기술 문양 표현방식은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에서 확인할 있다. 또한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백제의 천하관과 내재된 사상은 바둑판의 도상 소재들을 통해서도 엿볼 있다.

 

쇼소인의 백제 보물들은 백제문화의 결정체이자, 미적감각이 축적되고 집약된 뛰어난 예술품이라고 있다.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제는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동아시아 각지에 전파시켰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고대 일본이며, 백제문화는 당시 일본의 문화적·사회적 측면에서 가히 혁명이라 불릴 만큼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쇼소인의 백제 유물들에 대한 연구는 백제문화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를 연구·복원하는데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있다.

 

쇼소인의 백제 유물처럼 우리의 기억속에 잊혀져 있던 해외 백제 유물들을 찾아 조사하여 국가경쟁력이 있는 문화콘텐츠자산으로 개발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박재용(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학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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