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남원 양씨 양성지선생 사우 구암사

2016.08.05(금) 07:09:43 | 맛난음식 (이메일주소:linecplan@naver.com
               	linecplan@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 문양공 눌재 양성지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곳이 바로 이곳 구암사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인물이 많았는데 대부분 아주 유명한 사람만 기억하기 마련이죠.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1길 2로 찾아가시면 구암사라고 있는데요. 이곳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01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구암사 입구
▲ 구암사 입구

양성지의 학덕을 숭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으로 평촌리 귀래봉 아래에 있는 구암사와 관련 있는 인물 양성지는 세종조부터 성종도까지 40여 년간 벼슬을 했습니다. 

충청남도 기념물
▲ 충청남도 기념물

이곳이 문화재자료 301호로 지정이 된 것은 1988년입니다.

구암사에 대한 안내
▲ 구암사에 대한 안내

처음에는 구암사라고 해서 사찰인지 알았는데요. 사찰이 아니라 금산 유림과 후손의 정성으로 1923년 건립되었으며 유림에서는 문양공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묘비 앞에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비에는 문양공 일생의 행장과 공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암사 외삼문
▲ 구암사 외삼문

조선시대의 역사적인 건물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태극문양을 한 외삼문이 있습니다.

구암사 경내
▲ 구암사 경내

세종때 인물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양성지는 세종 23년 급제하여 집현전 학자, 이조판서, 대제학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사 개찬에도 참여했습니다.

오래된 고택
▲ 오래된 고택

자연석 기초위에 정면 4칸, 측면 두칸의 조그마한 고택이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암사
▲ 구암사

6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9세에 글을 지었다는 양성지는 서적의 보존·간행에 힘써 10조의 상소를 한 적도 있고,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고, 1471년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좌리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
▲ 제사를 지내는 공간

양성지는 민족주체의식이 강한 사상가로 단군을 실제의 인물로 숭앙하기도 했던 사람이라네요. 

구암사를 떠나며
▲ 구암사를 떠나며

양성지의 흔적은 이곳 구암사뿐만이 아니라 대포서원이라는 곳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맛난음식님의 다른 기사 보기

[맛난음식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