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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이응노 기념관과 순수한 연꽃의 매력

2016.07.26(화) 04:44:22 | 초지일관 (이메일주소:skdlem23@naver.com
               	skdlem2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응노 미술관은 홍성이 자랑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인데요. 
전 이응노의 생애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 주변의 환경과 연꽃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살을 데워버릴 것 같은 폭염속에서도 짙푸른 녹음은 너무나 좋았어요. 

이응노 생가 앞에 있는 언덕
▲ 이응노 생가 앞에 있는 언덕

이응노 생가와 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만개한 연꽃
▲ 만개한 연꽃

봄이 벚꽃과 진달래등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연꽃의 계절입니다. 여름이 되어야지 만날 수 있는 연꽃과 연잎은 화려하지 않은 것 같은데 화려합니다. 마치 고생대로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순백색의 연꽃
▲ 순백색의 연꽃

연꽃이 피는 곳은 진흙탕이지만 그 곳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이응노 생가
▲ 이응노 생가

저 앞에 이응노 생가가 보입니다. 이응노 화백은 그림 뿐만이 아니라 서예, 조각, 도예까지 했던 예술가라고 합니다. 1900년대 초반에 이곳에서 태어나 17살까지 살다가 서울을 거쳐 일본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응노 생가에 대한 설명
▲ 이응노 생가에 대한 설명

고암 이응노 생가터라고 간단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복원된 곳인데요. 사람도 없고 마당도 넓고 좋네요. 

까페와 기념관
▲ 까페와 기념관

위쪽에는 까페와 이응노 화백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나는 홍성 사람입니다.
▲ 나는 홍성 사람입니다.

고암 이응노, 1904 홍성 -> 1989 파리  
"나는 그래도 고독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을 뿐.
나는 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서예작품
▲ 서예작품

자신이 홍성 사람이란 것을 항상 자랑스러워 했던 이응노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그대로 겪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고국에서 보내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떠났다고 하네요. 

화폭에 그린 그림
▲ 화폭에 그린 그림

예술세계나 그림에 대해서 잘은 알지 못하지만 무언가 쓸쓸함과 적막함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화선지에 먹물만 가지고도 저런 작품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힘인 듯 해요. 

인간의 군상
▲ 인간의 군상

군상이라는 작품인데요. 온갖 사람들의 모습이 액자안에 살아 숨쉬는 듯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15회 전국고암미술 실기대회 입상작 전시회
▲ 15회 전국고암미술 실기대회 입상작 전시회

이응노 전시관에 오시면 제 15회 전국고암미술 실기대회 입상작 전시회도 볼 수 있습니다.
 
분홍색의 연꽃
▲ 분홍색의 연꽃

다시 한번 나와 분홍빛의 연꽃을 만나봅니다. 아직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그나마 이 연꽃을 보니까 위안이 됩니다. 

자연과 어우러지세요.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이응노로 61-7에 가면 만날 수 있구요. 지금 연꽃이 만발했으니 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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