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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백제 장인의 혼이 살아있는 '상감' 의 모든것

칼, 도기, 허리띠 등에 남겨진 전통문양… 고대 '창조정신' 을 배우다

2016.01.20(수) 12:02:38 | 강석훈 (이메일주소:rkdtjrgns37@hanmail.net
               	rkdtjrgns3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의 무늬는 누가 새긴걸까? 사람이 손으로 한걸까? 아니면 기계가 파내준걸까?’
‘내 허리의 가죽벨트에 있는 무늬는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판걸까?’
‘우리집 사기그릇의 예쁜 그림은 무엇으로 새겼고, 색깔은 어떻게 입힌걸까?’
가끔씩 이런 의문 한번쯤 가져봤을 법 하다.
보석 또는 기타 장식품에 새겨진 각종 문양, 지금은 기계가 대부분 다 하고 일부는 여전히 수공예로 한다지만 전적으로 100% 손으로 했다. 그야말로 전통 수공예다.
 
이런 전통기법을 다시 확인해 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마련됐다.
특히 백제가 일왕에게 하사한(민족적 우월성) 칠지도는 현재 이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에서 직접 가져와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다시 볼 수가 없는 중요한 관람전이다.
자녀들에게도 교과서에서만 본 칠지도를 직접 보여줄 좋은 기회다.

 

고대상감전이 열리고 있는 공주박물관 특별 전시실

▲ 고대상감전이 열리고 있는 공주박물관 특별 전시실

전시실 내부. 자녀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가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전시실 내부. 두 아이가 전시품을 보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1월초부터 시작해 다음달 2월말까지를 특별전시기간으로 정해 ‘한국의 고대 상감-큰 칼에 아로새긴 최고의 기술’전을 열고 그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주말에는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가족이 함께 상감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진행한다.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겨울박물관교실-상감이 뭘까?’를 마련했다. 참가 대상은 초교 1~4학년이며, 초교 1~2학년과 3~4학년으로 구분해 이달 19~22일 매일 오전 10시~낮 12시 진행한다.
프로그램 내용은 초등학교 1~2학년은 문화재 속 무늬를 찾고 무늬의 의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초교 3~4학년은 상감과 관련된 문화재를 알아보고 상감기법을 체험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못해 공주 박물관에 가시지 못하는 분들, 그리고 공주로 상감을 직접 보러 가실분들에게는 미리 알고 가보자는 뜻에서 여기 도민리포터가 고대 상감에 대해 제대로 중계를 해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전해 드리는 상감에 대한 의미와 기법, 평가 등은 공주박물관에서 제공해 준 전문적인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상감이란 금속, 자기, 나무, 가죽 등으로 만든 기물에 흠을 파거나 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다른 재질을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금속 상감이란 철 구리 은 등으로 만든 기물의 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홈을 내고 여기에 다른 금속인 금 은 동을 박아 넣는 기법을 말하는데, 선상감(골상감), 면상감, 박상감(땜상감), 입사 등으로 나뉜다.
 

허리띠고리. 가늘고 긴 봉의 형태로 ‘곡봉형’ 허리띠고리라고 불리며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에 가장 유행했던 양식이다. 전면을 도금 처리하고 여기에 색체 대비를 위하여 녹송석을 감입해 장식성을 높였다. 녹송석이나 보석류를 감입하는 기법은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활용되던 방식으로 초기 상감 자료에 많이 사용되던 방식 중 하나였다.

▲ 허리띠고리. 가늘고 긴 봉의 형태로 ‘곡봉형’ 허리띠고리라고 불리며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에 가장 유행했던 양식이다. 전면을 도금 처리하고 여기에 색체 대비를 위하여 녹송석을 감입해 장식성을 높였다. 녹송석이나 보석류를 감입하는 기법은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활용되던 방식으로 초기 상감 자료에 많이 사용되던 방식 중 하나였다.

상감허리띠고리. 고리쪽이 좁고 뒤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비파모양의 허리띠고리다. 표면에는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은실은 쪼음 기법으로 삽입하고, 약간 두터운 금판을 부착하는 금착기법으로 시문했다. 이때 금판이 탈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를 정으로 꼭꼭 눌러박아 면을 정리했다.

▲ 상감허리띠고리. 고리쪽이 좁고 뒤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비파모양의 허리띠고리다. 표면에는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은실은 쪼음 기법으로 삽입하고, 약간 두터운 금판을 부착하는 금착기법으로 시문했다. 이때 금판이 탈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를 정으로 꼭꼭 눌러박아 면을 정리했다.

상감이 정교하게 새겨진 전통 용기

▲ 상감이 정교하게 새겨진 전통 용기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자물통

▲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자물통


상감의 용도는 장식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상감의 방식은 서로 다른 재질의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정 등으로 찍어서 상처를 내고 파 넣거나 누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상감 기법은 보통 정으로 바탕 금속에 홈을 만드는 과정과 상감될 금 은선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상감될 재질이 홈에서 빠지지 않게 마무리 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이 작업 중에서도 바탕 금속 정질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력이 발현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상감될 재질을 만드는 방법은 보통 단조, 아말감, 고은선 기법으로 언급되며, 이렇게 제작된 금 은선 등이 홈에서 빠지지 않게 마무리 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나라에서 금속 상감 기술이 등장하는 것은 기원 전후한 시기 낙랑을 통해서였다. 평양 출토로 전하는 금은이 상감된 동관 등이 나타난 사례에서 그것을 알 수 있고, 대구에서는 명문이 상감된 기물들이 철토되어 중원식 금속 상감 기법이 이른 시기부터 수용 되었음을 보여준다.
 
백제의 상감 기술은 4세기에 제작된 칠지도를 필두로 5~6세기가 되면 고리자루칼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백제 상감 기술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위해 백제 상감 기술의 기원, 확립, 확산, 전승, 공유라는 주제로 세분화해서 진행됐다.
 

거울. 평양의 도제리 50호분에서 출토된 철로 만든 거울이다. 중앙에 반구형상의 큰 뉴를 중심으로 감꼭지 모양의 뉴좌가 있고, 전면에 기봉문이, 연부에는 음각으로 내행화문이 표현되었다. 동물형 연적, 벼루 등과 함께 전실묘에서 출토되었다.

▲ 거울. 평양의 도제리 50호분에서 출토된 철로 만든 거울이다. 중앙에 반구형상의 큰 뉴를 중심으로 감꼭지 모양의 뉴좌가 있고, 전면에 기봉문이, 연부에는 음각으로 내행화문이 표현되었다. 동물형 연적, 벼루 등과 함께 전실묘에서 출토되었다.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 유유자적 신선이 노니는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용기

상감이 새겨진 각종 용기들

▲ 상감이 새겨진 각종 용기들
 

상감이 새겨진 항아리형 용기.

▲ 상감이 새겨진 항아리형 용기. 상감과 함께 용기의 형태가 상당히 유려하다.

 

세숫대야에도 상감이 새겨져 있다.

▲ 세숫대야에도 상감이 새겨져 있다.


또한 고대 한반도에서 금속 상감 기술이 확립되는 백제 한성 웅진기 상감 자료의 계통을 밝혀보고자 과학적 분석을 거듭했다 한다.
그 결과, 백제 상감 기술은 크게 축조 상감과 면상감이 확인되는 천안과 공주 지역 출토품과 모조 상감 기법이 확인되는 오산과 서산 지역 등의 출토품으로 구분된다.
난이도 높은 기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 사회·경제적 상황 등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연계되었을 때 당대 최고의 기술이 나올 수 있다.
최고의 기술이 단지 기술적 난이도만의 문제라면 오늘에 와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더해 경계 없이 수용해 백제화하고 이를 가야 신라와 공유하고 왜나라에 전했던 백제의 상감 기술이야말로 최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창조’와 ‘공유’라는 현대사회의 화두에 대한 백제의 응답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원의 방식으로 제작된 금은상감허리띠고리는 표면에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문양을 화려하게 표현했는데, 약간 두터운 금판을 부착하는 금착 기법을 구현했다.
이러한 면처리 기법은 중원에서 춘추전국시대부터 유행하던 기법으로 수촌리나 용원리 대도에 사용된 금판을 정으로 쪼아서 면을 압착하는 면상감 기법과는 다른 기원을 보여준다.
 

이엽문 고리자루칼 / 봉황문고리자루칼. 환과 봉두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봉황문고리자루칼로 눈과 같은 봉두의 여러 부분에 은상감으로 형태를 묘사하였다. 환 표현에는 용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은상감되어 있다. 초구금구는 병두금구와 같이 금동판 위에 봉황문을 은상감했다.

▲ 이엽문 고리자루칼 / 봉황문고리자루칼. 환과 봉두가 일체형으로 제작된 봉황문고리자루칼로 눈과 같은 봉두의 여러 부분에 은상감으로 형태를 묘사하였다. 환 표현에는 용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은상감되어 있다. 초구금구는 병두금구와 같이 금동판 위에 봉황문을 은상감했다.

은상감고리자루칼. 환두 내에는 장식이 없으나 환 표면에 두 마리 용이 머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두고 새겨져 있다. 손잡이에는 짧은 빗금이 새겨진 금사를 나선형으로 감았고, 그 양쪽에 용문이 그려진 병두금구와 초구금구가 감겨져 있다. 떨어져 나간 초미금구는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한 쪽에 와문이 은상감되어 잇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은상감고리자루칼. 환두 내에는 장식이 없으나 환 표면에 두 마리 용이 머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두고 새겨져 있다. 손잡이에는 짧은 빗금이 새겨진 금사를 나선형으로 감았고, 그 양쪽에 용문이 그려진 병두금구와 초구금구가 감겨져 있다. 떨어져 나간 초미금구는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한 쪽에 와문이 은상감되어 잇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낙랑구역 정백동 둥지에서 동물형 허리띠고리의 몸체를 장식하기 위해 금판을 부착하고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정으로 찍어 내는 기술적 특징이 관찰되어 백제의 면상감 기법과는 유사성이 관찰된다.
 
이는 금은으로 상감하는 기법은 중원의 영향과 함께 북방계의 금속 공예기법도 고조선과 낙랑을 거쳐 백제지역으로 전래되는 다원화 된 기원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칠지도. 일본 나라현 덴리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칼로 도신의 좌우에 각각 3개의 가지날을 엇갈리게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단조로 만든 칼의 양면 중심부에 글을 새겨 넣을 수 잇도록 가지날과 연결된 금선으로 구획하였다. 서력 369년(근초고왕 24)에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칠지도를 만들어 하사한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칠지도. 일본 나라현 덴리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칼로 도신의 좌우에 각각 3개의 가지날을 엇갈리게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단조로 만든 칼의 양면 중심부에 글을 새겨 넣을 수 잇도록 가지날과 연결된 금선으로 구획하였다. 서력 369년(근초고왕 24)에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칠지도를 만들어 하사한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칠지도의 문양과 상감

▲ 칠지도의 문자와 상감


백제의 상감은 일본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소장돼 있는 칠지도를 비롯해 5~6세기에 걸쳐 약 1세기 정도의 한정적인 기간 동안 백제권 전역에서 철제 칼에 새기는 방식으로 전성기를 보였다고 할수 있다.
한성 웅진기의 백제 상감 기술은 금과 은을 이용한 선상감이 주류를 이룬다. 오산 수청동, 천안 화성리와 용원리, 공주 수촌리 등 한성기로 대별되는 상감대도는 모두 환두부를 중심으로 상감이 되어있다.
반면, 웅진기 출토품은 칼의 도신(刀身)에 새겨지는 것이 특징이다. 신분적 위계가 높을수록 상감 재료는 금을 사용하고 상감 문양에 있어서도 용문 또는 봉황문의 동물 무늬가 새겨지는 경향도 보인다.
 
백제 상감 기술은 시기적 차이와 피장자의 신분적 위계에 따라 상감이 새겨진 위치, 상감 재료 및 문양의 종류가 결정된 것으로 보이며 그 밑바탕이 되는 상감 기술은 외래적인 것이지만, 백제적인 기술로 확립되어 주변국인 대가야, 신라, 왜에 전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장식품

▲ 상감이 새겨진 금속제 장식품

금제 상감이 새겨진 칼의 손잡이 부분

▲ 금제 상감이 정교하게 새겨진 칼의 손잡이 부분

금제 상감이 새겨진 칼집 부분

▲ 금제 상감이 새겨진 칼집 부분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금속의 상감기법은 금과 은의 색감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과 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물에 세련된 문양 표현을 구사하였으며, 이를 통해 적재적소에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는 등 금속 공예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이어서 고려시대가 되면 철제 상감 거울걸이나 대야와 같이 생활 기물도 있으나 당시 불교의 성행에 따라 불교 공예품, 그 중에서도 공양구를 중심으로 많은 수의 기물이 제작되었다.
 
이렇게 면면히 이어온 상감 공예는 오늘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와 각 시도 무형 문화재 등 소수의 장인들에 의해 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
이는 상감 기술의 제작 공정이 어려워 다양한 공예품 제작에 활용도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공예 기법은 오랜 역사를 두고 계승 발전되어 온 우리의 문화이며, 현대 금속 공예의 발전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전시실

▲ 전시실

자녀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

▲ 자녀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

하나라도 더 꼼꼼히...

▲ 하나라도 더 꼼꼼히...


정과 작은 조각칼 하나로 선에서부터 면, 회화적 표현까지도 가능했던 상감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성과 아울러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 현대 금속 공예 발전의 위해 더욱 계승 발전시켜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후손으로서 미적 감각을 가진 백제 장인들의 ‘창조’정신을 현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분야에서 힘썼으면 좋겠다.

이 상감전은 2월말까지 계속되니 초중고 자녀들은 물론 대학생이나 어른들도 꼭 한번 가서 보면 좋을것 같다. 특히 백제가 일본 왕에게 하사한 칠지도 같은 것은 일본에서 왔으니 다시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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