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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선의 서성(書星) 예산출신 자암 김구선생

제1회 전국 자암 김구 서예대전이 열렸고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2014.01.22(수) 23:29:19 | 대한독립만세 (이메일주소:lkdfldf33@hanmail.net
               	lkdfldf3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씨체가 워낙 독특하면서도 뛰어나고 출중해서 중국인들이 그의 필첩을 돈을 주고 사갔다는 분, 중국인들이 자신의 필첩을 사간다는 말을 듣고는 아예 붓을 꺾어버린 지조를 가진 분,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자 서예가로 안평대군, 양사언, 한석봉과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꼽혔던 걸출한 인물. 누구실까요?
 
조선의 서성(書星) 예산출신 자암 김구선생이십니다.
 
자암 김구선생이라면 잘 모르는 분들 많이 계실듯 합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는 분이어서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작년 말에 이분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일환으로 후손들과 예산군 예산문화원이 힘을 합쳐 제 1회 서예대전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수상작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계제에 저도 자암 김구 선생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렇게 도민여러분께 이분의 업적과 여러 내용을 쓰게 되었습니다.
 
자암 김구 선생께서는 예산에서 태어나셨고 뛰어난 서예가이셨는데 당대에 워낙 대단한 업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예산에만 유독 이런 명필이 두분이나 계셨다는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수덕사의 정기를 받으셨는지....
 
어쨌거나 그래서 그동안에도 사학자들 사이에서 자암 김구 선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던 차에 이번에 예산문화원이 나서서 자암기념사업회 회장이신 김충희씨(선생의 16대 후손)와 함께 자암의 이름을 걸고 서예대전을 연거라 합니다.
 
그리고 저도 도민리터로서 그동안 이 행사의 진행 상황을 관심있게 눈여겨 보다가 이번 대회 결과를 취재하고 수상한 작품중 우수한 것들을 골라서 충남넷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김구선생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 더 적기로 하고 서예대전 우수작부터 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전체 수상작을 다 보여드릴수 없기에 일부분만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장원 여인숙

▲ 장원 여인숙


차상 김미정

▲ 차상 김미정


차상 김대억

▲ 차상 김대억


차상 박희송

▲ 차상 박희송


차하 최정화

▲ 차하 최정화


차하 새늘

▲ 차하 새늘


차하 이상구

▲ 차하 이상구


차하 전미옥

▲ 차하 전미옥


차하 김진복

▲ 차하 김진복


차하 안무광

▲ 차하 안무광


특선 구정옥

▲ 특선 구정옥


특선 한경희

▲ 특선 한경희


특선 정지연

▲ 특선 정지연


특선 정홍길

▲ 특선 정홍길


특선 곽재순

▲ 특선 곽재순


특선 전우진

▲ 특선 전우진


특선 이종암

▲ 특선 이종암


특선 오광석

▲ 특선 오광석


특선 백희정

▲ 특선 백희정


서예와 서예에 대해 식견이 부족한 저로서는 모든 작품들이 다 훌륭해서 이러쿵 저러쿵 설명이나 평가를 내릴수 없지만, 그냥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정말 대단한 실력인것 같습니다.

서예작품만 볼수는 없죠.
저는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선생의 묘와 신도비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자암 김구선생 묘소

▲ 자암 김구선생 묘소와 신도비


묘소에 있는 정려

▲ 묘소에 있는 정려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묘소 앞의 안내판

▲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묘소 앞의 안내판


시도비와 묘소, 그리고 정려와 안내문이 있습니다.
너무 외로워 보였지만 이제서라도 후손들이 그 이름을 알아볼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자암은 일찍부터 주자학연구에 전념해 학문이 조광조, 김식과 견주었으며, 음률에도 뛰어나 악정에 임명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조광조, 김정 등과 함께 삼암(三庵)으로 불리면서 개혁정치에 앞장서 중종 14년(1519년) 32세의 나이로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으나 중종반정의 공신들로부터 반감을 사 남해에서 13년 동안 유배살이를 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생은 수많은 시문을 남겼지만 대부분 유실되었고 현재는 ‘자암집’을 통해 전해지는 국문시조 5수와 경기체가인 화전별곡 뿐이라 합니다.
 
독특한 서체의 명필인 그의 글씨는 서울 인수방(仁壽坊)에 살았다 하여‘인수체’라고도 불리운다 합니다.
 
이번에 처음 열린 자암 김구 서예대전을 통해 앞으로 선생에 대한 연구도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그분의 명가(名價)도 더 높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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