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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부여 백제원에서 근대기의 문화여행

2014.01.22(수) 11:36:16 | 소중한 벗 (이메일주소:djlsk77@hanmail.net
               	djlsk7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하던 시절, 참 불편하긴 했어도 돌이켜 보면 아릿한 추억과 사람 사는 향기가 물씬 풍기던 그때였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나, 새마을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시골에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물결을 겪으며 성장했는데 그 시절의 깨알 같은 추억을 하나씩 들여다 볼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부여에 있습니다.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1


부여‘백제원(풀 네임은‘백제원 근대 생활 박물관’)입니다.
 
대개 전통 민속박물관에 가면 오래된 전통 농기구 위주와 생활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렇게 60년대 이후 80년대 초반까지의 근대화 괴정에서 사라져 간 것들을 공산품까지 죄다 모아 둔 곳은 흔치 않습니다.
백제원은 그래서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가서 보면 “아, 이거!”“아, 맞다. 그땐 이랬지~”하며 감탄하곤 합니다.
너무 빠른 순간에 급속도로 바뀌어 버려 그 많은 것들을 송두리째 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백제원에 가면 우리나라 근대기에 도시와 농촌에서 쓰고 보았던 서민들의 생활모습이 담긴 각종 민속 유물, 민속자료, 생활도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어가며 꼼꼼하게 다 돌아보려면 몇시간은 족히 걸릴듯 합니다.
 
오늘은 도민리포터가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 추억열차를 타고 돌아가 보면 꼭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추려 보여드리겠습니다.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2


옛날 샘입니다. 요즘 수도와는 개념이 다른 지하수이랍니다.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3


안내문은  ‘작두샴과 마중물’이라고 되어있죠.
마중물은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먼저 한바가지 붓는‘밑물’인데 주방에서 수도 꼭지만 틀면 물이 철철철 넘치는 세대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마중물이나 ‘샴’이라 부르던 샘물의 개념조차 잘 모를 것입니다.

밖에서 하루 왼종일 펄펄 뛰어놀다가 이 작두샴에 달려가 물을 퍼올리고 그걸로 등 목욕을 하던 시절 생각 나시죠?
어찌나 시원하던지...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4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5


콩쿨대회 기억하실것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10월중순과 11월초 사이 온동네 청춘남녀를 비롯해 연로하신 아저씨까지 마을 학교 운동장에 죄다 모여 한곡조씩 뽑아내던 그것 말입니다.

“백마~아~강 달 바~암에”
마이크를 잡고 한껏 목소리 자랑을 하던 춘자 누님, 명수 형님, 지금 전부 어디에서 살고 계신지.
그 시절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열렸던 콩쿨대회 무대를 재현해 놓은 것이 무척 정겹습니다.
 
그러던 콩쿨대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문만 열고 나가면 노래방 천지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제원에 이렇게 전시된 확성기가 그때의 추억을 더욱 또렷하게 해 줍니다. 문득 마이크를 잡고 그때를 회상하며 한곡조 멋들어지게 뽑고 싶습니다.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6


70년대에는 먹을것도 참 부족해서 도시락 싸 오는 아이들도 적었고 밥 굶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정부가 제공하는 급식 차가 왔는데 그 급식이란 다름 아닌 빵이었습니다. 빵을 실은 트럭이 점심때마다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수업중이던 아이들이 모두 다 “와~”하며 탄성을 질러댔죠.

그런 시기에 과자를 파는 상점에 가면 이렇게 기성품으로 나온 제품 빵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급식으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빵보다는 훨씬 맛있었거든요.
지금도 이름이 생생히 기억나는 삼립빵, 삼미빵, 샤니케?, 서울 빵...
이 빵들을 담아 날랐던 나무궤짝이 그때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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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뽑기, 뭔지 아시죠? 겨울철에 참 맛있는 군것질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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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금강산에 가 본적이 있는데 주변 산이 전부 벌거숭이더군요. 땔깜이 부족한 북한 주민들이 나무를 죄다 베어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미리부터 산림보호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온 국토의 산이란 산은 전부다 벌거숭이가 됐을텐데 그래도 일찍부터 산림보호를 시작했고, 이렇게 그 역할을 담당하던 공무원에게 부여한 이른바 “산림감시원 마패”입니다.
‘순산원’이란 말 그대로 삼림자원을 훼손하는 사람들을 막고 감시하는 순찰업무를 하는 요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완장을 차고 오토바이와 차를 타고 시골마을을 돌며 감시했더랬죠.
 

부여백제원에서근대기의문화여행 9


PDP텔레비전을 넘어 LCD나 초고화질의 LED텔레비전이 넘치는 요즘에 이런 옛날 텔레비전 보면 마냥 신기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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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써본지도 오래. 뭐든지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시절입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손으로 쓴 편지를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 행낭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일이 배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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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라고 부르던 오르간.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과 걸상.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선생님이 쳐 주시던 풍금소리가 옆에서 들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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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 기억 나시죠?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미모들이십니다.
남성훈, 안소영, 한혜숙, 이덕화씨 등. 이곳에 걸려있는 역대급 연예인들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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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고 다니던 고교시절에 쓰던 모자, 여학생의 검은 세라복, 남학생의 교련복까지요. 그때는 고등학생 시절에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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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차가운 도시락을 난로에 구워먹던 추억도 아릿합니다. 벤또라고 부르던 양은 도시락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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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에 넣고 스위치만 돌리면 그만인 요즘과 달리 그때는 이런 곤로라는게 있었습니다. 석유 넣고 심지에 성냥불 켜서 쓰던... 석유 타는 냄새가 어지나 고약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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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테나 구경해 보셨나요? 아마도 시골에서조차 위성을 쓰기 때문에 이런 안테나 쓰는 곳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게 텔레비전 전파를 잡아주던 안테나였는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시골에 가면 집 뒤에 이런 안테나가 죽죽 늘어서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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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디지털 영상장비가 영화관을 이끌어 가는 요즘 이런 영사기는 골동품에 속합니다. ‘촤르르륵’하며 영화를 보여주던 영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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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DVD로 영화가 나오는 지금과 달리 이런 비디오 테이프가 한때 주종을 이루었는데 이것조차도 급속도로 사라져갔습니다. 요즘 CD와 DVD에 밀려 테이프 노래가 완전히 없어진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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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팥빙수 기계입니다. 요즘 테이크 아웃으로 드르륵 만들어 내는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투박한 것이었지만 맛은 끝내준 팥빙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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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 정말 그럴것 같죠. 이건 등잔은 아니지만 첨단 휴레쉬가 있는 요즘과 달리 그때는 이런 손등을 들고 다녔습니다. 안에는 석유나 들기름을 심지에 태워서 쓰는 등이 있었죠.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니 어렵네요.
백제원에는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추억거리가 넘쳐납니다. 직접 들러서 추억여행을 해 보세요. 깨알 재미를 느끼실수 있을 것입니다.
 
부여 백제원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553(효암리 211-1 / 전화 041-83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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