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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헌선생과 칠백의사, 당신께 엎드려 천번 절을 드립니다

2013.06.20(목) 00:09:59 | 금산댁 (이메일주소:dksjks22@hanmail.net
               	dksjks2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명분이 타당하면 무모함은 용기가 되고, 무한한 에너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물며, 무모함이 나라를 구하기 위함이라면요?

개인적인 무모함이야 시도하다가 안되면 그만이지만, 전쟁에서의 무모함은 곧 생명을 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이 강토를 지켜냈습니다. 우리 금산의 자랑이자 국가적인 영웅이신 조헌 선생도 대한민국 역사와 후세에 길이 남을 분이십니다.

칠백의총 입구

▲ 칠백의총 입구 의총문
 

칠백의총을 지키고 있는 늠름한 소나무

▲ 칠백의총을 지키고 있는 늠름한 소나무


칠백의총을 방문하여 당신의 묘소와 기념관을 참배했습니다.

성역을 돌아보는 내내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진정 이렇게‘무모한’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칠백의총은 우리들이 과거 학창시절 한두번씩 전부 다녀가 보았을 성역입니다. 이 곳은 임진왜란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때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해 고작 700여명의 의병으로 15000여명의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 순절하신 700의사의 충절의 혼이 서려있는 곳, 진정한 성역입니다.

임진왜란때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순찰사인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이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알고 작전을 바꾸어 공격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조헌선생이 이를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했습니다.

이날 조헌 선생과 700의사는 필사의 정신으로 결전을 벌이다가 전원 순절하셨습니다.

조헌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끝난 4일 후 칠백의사를 한 곳에 합장하고 칠백의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일군순의비

▲ 일군순의비
 

일군순의비 안내 설명의 글

▲ 일군순의비 안내 설명의 글
 

순의비와 비각

▲ 순의비와 비각


그후 선조 35년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에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고 합니다. 또한 현종때에 이르러서는 종용사라는 사액(賜額)과 토지를 내려 대대로 제사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순절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신 종용사

▲ 순절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신 종용사 앞 전경
 

가까이서 본 종용사

▲ 가까이서 본 종용사
 

종용사 옆에서...

▲ 종용사 옆에서...
 

조헌 선생, 고경명 선생, 영규대사의 위패

▲ 조헌 선생, 고경명 선생, 영규대사의 위패
 

위패 왼쪽

▲ 위패 왼쪽
 

위패 오른쪽

▲ 위패 오른쪽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신 고경명선생과 영규대사, 그 휘하 병사들 2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중앙의 3위의 위패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 좌로부터 고경명선생, 중봉 조헌선생, 영규대사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혼을 말살할 악의에 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성역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나 그후 지역 주민들이 파손된 비석을 땅속에 묻어 보존함으로써 칠백의사의 호국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게 된 것이라 합니다.

종용사 뒤 조헌선생 묘소

▲ 종용사 뒤 조헌선생 묘소
 

조헌선생 업적을 기록한 비문

▲ 조헌선생 업적을 기록한 비문


그리고 종용사 뒤에는 조헌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꼭 참배를 하고 묵념을 드려야 하는 곳입니다.

칠백의총이 왜국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그린 그림

▲ 칠백의총이 왜국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그린 그림
 

출진도

▲금산혈전 출진도
 

조헌선생이 쓰신 화살통

▲ 조헌선생이 쓰신 화살통


조헌선생 묘소에서 참배를 하고 나온 후 이번에는 기념관으로 갑니다.

해방후 금산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을 보수하고 종용사를 다시 지었으며, 정부에서는 칠백의총을 사적 제105호로 지정하고,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헌선생 영정

▲ 조헌선생 영정


조헌 선생과 함께 왜구를 막아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신 700의사는 요즘 자칫 약화되기 쉬운 민족과 국가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 주신 분들입니다.

이같은 선조들의 맵고 곧은 의기와 호국정신, 무고한 생명들을 보호하고자 희생한 분들의 정의로운 행적과 그 빛나는 정신을 우리는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것이며 이런 뜻을 자녀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 장차 청소년들에게 애국애족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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