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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스님 500명이 밥 지어먹던 개태사 철확(태조 왕건이 내린 엄청 큰 솥단지)

2013.06.19(수) 13:02:36 | 김기원 (이메일주소:skaalsqo@hanmail.net
               	skaalsqo@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절 여행을 하다 보면 참 생각잖은 진객을 만나기도 하고, 전혀 뜻밖의 어떤 사실을 알고 난 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청남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갑사 동학사 수덕사 같은 절 말고도, 잘 알려져 있거나 그렇지 않은 수많은 고찰들이 있습니다.

 그런 고찰에는 대개 국보, 보물, 그리고 도지정 문화재나 시군에서 관리하는 향토 문화재들이 있기에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절 여행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무지인 탓도 있으나 절의 경내를 돌다 보면 뜻밖의 것을 만나기도 해서 그럴때는 어찌나 반갑던지요.

 개태사에 갔다가 그런 진객을 만났습니다.

 

개태사 보호각 아래 숨어있는 철확

▲ 개태사 보호각 아래 숨어있는 철확
 

더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실로 엄청나게 큰 크기

▲ 더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실로 엄청나게 큰 크기
 

철확 안내설명 표지

▲ 철확 안내설명 표지



개태사 경내 오른쪽 뒤편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만 보호각 우주정이라고 있습니다.  그 아래 엄청나게 큰 철제 가마솥이 있더군요.
이름은 ‘개태사 철확’입니다.

 당장 눈으로 봐서는 그 크기가 짐작이 덜 갈수 있겠으나 실로 엄청나게 큰 솥단지입니다.
 놀라움과 신기함에 우선 안내문을 살펴 읽어보고 내용을 정리해 보니 이렇습니다.

 고려시대의 대형 철제 솥으로, 당시 개태사의 사세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고려태조 왕건이 승려 500여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는군요.

 

지금 3m, 둘레가 무려 9m

▲ 지금 3m, 둘레가 무려 9m


 지름이 자그만치 3m, 높이 1m, 둘레가 무려 9m입니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때 대홍수가 일어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된적도 있다고 합니다.

 

솥단지 밑부분

▲ 솥단지 밑부분


 평면 원형으로, 테두리가 없는 벙거지형 모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이고 밑바닥은 직경이 약 90㎝의 원형 평면을 이루어 불을 효과적으로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솥단지 아래의 돌대를 중심으로 상부는 곧추 서있고, 하부는 20㎝ 정도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도록 만들어져 있네요. 두께를 보니 약 3㎝ 정도입니다. 

 스님한테 찾아가 이런 솥단지는 어떻게 만드는거냐고 여쭤 보니 거대한 거푸집을 이용해서 주물을 만들고 거기에다 쇳물을 부어 제작한다네요.

 

솥단지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각 우주정

▲ 솥단지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각 우주정
 

우주정 안에 걸려 있는 개태사 복원에 도움 주신분들의 명단

▲ 우주정 안에 걸려 있는 개태사 복원에 도움 주신분들의 명단


 솥단지를 보호하는 누각이름이 ‘우주정(宇宙井)’이라고 선명하게 씌여져 있고, 우주정 안에는 개태사 복원과 우주정을 되가져다 놓기까지 노력해 주신 불자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개태사 철확이 오늘날까지 보존되는데는 우여곡절도 적잖았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놈들이 이것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부산까지 가지고 내려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걸 배에 실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철확 속에서 큰 소리가 나서 한바탕 소동 끝에 선적이 보류되었다는군요.

 그 후 우여곡절 끝에 한동안 서울의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하였고, 그 사이 연산 지역 사람들의 여론이 들끓자 마침내 연산공원으로 옮겨졌다가 본래의 자리인 개태사 경내로 옮겨 보관되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또한 일설로는 일본군들이 이 솥단지를 녹여서 무기를 만드는 데 보태려고 솥을 깨려고 하자 별안간 사람이 죽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중병이 들어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깨진 왼쪽부분

▲ 깨진 왼쪽부분
 

깨진 앞부분

▲ 깨진 앞 오른쪽부분


 

전체적으로 깨진 부위

▲ 깨진 양쪽 부분


그래서인지 솥단지는 곳곳에 깨지고 파손된 흔적이 많아서 약간 안타까웠습니다. 저 큰 솥단지가 원형의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는 마음에서요.

 하지만 그래도 깨지고 상했어도 이렇게라도 남아 우리에게 놀라움과 경탄을 준 당시의 고려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개태사 경내

▲ 개태사 경내와 대웅전, 그리고 오층석탑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세력을 완전히 물리친 후, 태조 23년(940)에 지은 절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위치는 세종때에 옮겨진 것이고 개태사 안에는 삼존불상과 석탑도 있습니다. 특히 이 개태사터 일대는 백제의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근처 황산벌에서 신라와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이것저것 사연도 많고 볼것도 많은 개태사입니다. 논산이 자랑하는 6경중 하나인 개태사에 오셔서 이 거대한 솥단지 한번 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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