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염라대왕도 알고 있다는 개태사 '철확'

충남 민속자료1호…옛 승려들이 국 끓이던 대형 가마솥

2009.04.29(수) | 잎싹 (이메일주소:kji206@naver.com
               	kji206@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염라대왕도알고있다는개태사철확 1  
[넷포터] 5월의 절은 아름답고 화려하다.
풍경소리와 염불소리도 신록으로 스며들며 투명한 하늘이 잠시 옷깃을 잡아끈다.

충남 논산에서 대전으로 나가는 1번국도변에 위치한 개태사.
태조 왕건이 백제 유민을 다독이기 위해 4년에 걸쳐 만든 절이다.
한때는 8만9암자를 소속시켰으며, 대각국사의 장경불사도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한다.

국가의 변고가 있을 때마다 중신들이 이곳에서 신탁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찰이다. 그 후 수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으로 방화 약탈되고,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개태사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사지석불입상, 충남민속자료 제1호인 개태사 철확, 충남문화재 자료제247호인 5층석탑과 제275호인 석조가 있다.

묵은 명성과는 달리 국도변 옆 차소리와 넓지 않은 절집에 조금은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그것도 잠시 특이하게 생긴 팔각모양건물 삼일지상정천궁과 청기와 건물인 정법궁(단군과 부처 그리고 관우의 영정이 있다고 전한다),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큰 가마솥 철확(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 만으로도 충분히 개태사를 둘러볼만하다.

그리고 새로 지은 ‘ㅌ’자 형태의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낮은 담장너머로 보이는 정겨운 시골풍경과 장엄하게 뻗어내린 천호산 줄기를 쳐다보며 잠시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도 다가오고 무채색의 절집은 온몸 휘감는 화려한 색채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속으로 잠시 스며 들어가 보면 어떨까.

  염라대왕도알고있다는개태사철확 2  
논산사람들이 죽어서 염라국에 가면 염라대왕이 "네가 연산의 가마솥과 은진미륵과 강경미내다리를 보았느냐?" 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이는 염라대왕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는 말이다.

개태사 철확(충남민속자료 제1호)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개국 사찰로 창건한 개태사 주방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형 철재솥이다.

개태사가 폐찰되자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뒤 조선시대인 1887년(고종 24) 대홍수로 2km 정도 하류로 떠내려 왔다는 설이 있고, 큰 가뭄에 이 솥을 다른 곳에 옮기면 비가 온다는 전설도 있어 연산 부근에 옮겨오게 되었다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개최된 박람회에 출품했다가 한동안 연산공원에 전시되었으며, 1981년 현재의 자리인 개태사로 옮겨왔다.
형태는 테두리가 없는 벙거지를 제쳐놓은 듯한 모양이며 크기는 직경 3m, 높이 1m이고 두께는 3cm 내외이다.

23cm 높이의 테가 곧바로 서 있고 그 아래로 20cm 정도가 경사면을 이루다가 다시 급경사를 이루면서 둥근 바닥을 이루고 있다.
승려의 식사에 쓰이던 국을 끓이던 솥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로 개태사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백과사전참고)

 

잎싹님의 다른 기사 보기

[잎싹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