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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왕흥사지 강당지 '6세기 최대 규모'

동서 46.8m·남북 19.2m 확인…군수리·능산리 등 보다 커

2009.09.29(화) | 관리자 (이메일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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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흥사지강당지6세기최대규모 1  
▲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사리기.
부여 왕흥사지(사적 제427호) 강당지가 6세기 백제 사찰 강당지로는 최대 규모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지난 3월부터 왕흥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 강당지와 금당지, 동·서 건물지의 규모와 배치를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강당지는 금당지 북편 기단으로부터 16m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규모는 동서 46.8m, 남북 19.2m로 조사됐다.
이는 군수리사지의 강당지(45.45m×15.15m)나 금강사지 강당지(45.1m×19.1m), 능산리사지 강당지(37.4m×18.0m) 등 6세기대 백제사찰 강당지 중에는 가장 큰 규모다.

강당지의 기단은 동·서·북쪽이 30㎝ 내외의 할석을 쌓아 만들었으며, 남쪽은 다듬은 석재를 이용한 가구식 기단이다.
남편기단 바깥으로는 10㎝ 내외로 할석과 기와를 빽빽하게 세워 만든 ‘낙수받이시설’도 드러났는데, 이 같은 시설은 금당지 서편 건물지에서도 일부 확인된 바 있다.

  왕흥사지강당지6세기최대규모 2  
▲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부여 왕흥사지 전경.
한편, 동·서회랑의 북쪽 끝에 이어지는 동·서 건물지의 규모 및 범위도 확인했다.
서건물지는 동서너비 13.2m, 남북길이(最長) 48.0m이고, 동건물지는 동서너비가 14.0m, 남북길이(추정) 48.0m로 확인됐는데, 양 건물의 북편기단은 강당지의 남편기단과 일직선상에 조성돼 있었다.
서건물지에서 서쪽으로 6m 떨어진 지점에서는 기단석렬이 노출돼 서편에 또 다른 건물지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강당지 및 회랑과 연결되는 동·서건물지의 위치와 규모, 그리고 주변 건물지의 분포 양상으로 볼 때 왕흥사는 백제 왕실사찰에 걸맞는 대규모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조사지역 내 장애물 및 주변 민가 철거를 완료한 후 백제 사찰 건물지 상부의 고려~조선시대 건물지들의 양상을 파악하고, 강당지 및 주변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해 왕흥사지의 전모를 밝힐 예정이다.

왕흥사지는 백제의 왕실사찰로 현재까지 목탑지와 금당지, 동·서 회랑지, 축대(동서석축) 및 진입로(남북석축) 등이 확인됐으며, 목탑지 심초부에서는 절대연대(577년)를 가진 ‘창왕명’ 사리기와 각종 공양구가 출토되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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