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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상재 선생의 청년정신을 묻다

서천군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 생가지에서

2020.02.25(화) 21:42:19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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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지 안내표지

“오늘 일자(2월 23일 일요일)로 전시관 공사로 폐쇄되었습니다.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아쉽네요.”
 
이상재 선생 생가
▲이상재 선생 생가로 들어가는 길

이상재 선생 생가지를 들어서자 입구 쪽에서 관계자가 나왔다. 오전의 맑은 날씨였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화창한 날씨에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전시관은 공사가 끝나면 다시 찾기로 하고 생가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채우기로 했다. 발짝을 떼기 전 펼침막의 글이 눈에 띈다.
 
 선생의 서훈등급 격상 요구 펼침막
▲선생의 서훈등급 격상 요구 펼침막

“영원한 조선의 청년 3.1운동 100주년의 해, 선생의 서훈등급 격상을 촉구합니다.”

3.1운동 100주년 해라면 펼침막은 작년부터 걸렸던 것일까. 그럼 이상재 선생의 서훈등급은 현재 어떤 등급일까. 관계자에게 펼침막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이상재 선생 추모비
▲이상재 선생 추모비

“이상재 선생은 현재 서훈 2등급으로 대통령장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경우 독립유공 훈격을 독립장에서 대한민국장으로 작년 2019년에 승격했어요. 이상재 선생도 그에 걸맞는 격상을 요구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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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소박한 초가의 이상재 선생 생가

솟을대문
▲솟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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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겹게 옹기종기 모인 장독대

이상재 선생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독립운동가, 계몽가 등으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선생의 생가에 와 보니 초가집의 안채와 부엌이 딸린 본채, 작은 방이 참으로 소박하다. 선생이 태어난 ‘종지리마을’ 관련해서는 비스듬히 누워 있는 비에 그 내용이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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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마주보는 자리에 비스듬히 놓인 '종지리마을비'

“옛 한산 8경 중 건지산, 일광재, 오라릿돌 등 3경을 일목으로 조망하는 경관촌이다. 근세에는 대 지도자인 월남 이상재 선생의 향리로 더욱 알려진 마을이다. 백제 신라 때에는 마산현에 속하였고 고려 때는 임천군의 한산현에 속하였다. 구한말에 한산군 북부면 지역이 되었는데 지형이 종지를 닮아서 종지울, 종지동 등으로 불리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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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이상재 선생 전시관

이상재 선생은 1850년에 태어나 1927년 신간회회장에 취임하여 민족지도자로 활동하다가 그해 3월 29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고 한다. 당시 일제강점기였음에도 한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10만 군중이 애도했다고 하니 선생의 면면을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선생의 청년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크고 올바른 기운, 곧 온 세상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인 ‘호연지기’가 아닐까.

생가를 나오며 다시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느냐고.

“의외로 많이 와요. 아이들 역사탐방을 비롯해서 대학교, 연구원 등 한 달 주말 일정이 빡빡했는데 지금 코로나19로 모든 일정이 다 취소됐어요.”

돌아가는 길, 쪽빛하늘이 여전하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한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기를, 그리고 도민의 노력으로 이상재 선생의 서훈이 대한민국장으로 승격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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