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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갑부가 된 '충남 운전면허 1호 문갑동'

변평섭의 '충남의 옛이야기' 9

2009.06.27(토) | 관리자 (이메일주소: )

  갑부가 된  
▲ 1912년에 87만원 공사비를 들여 개통된 공주 - 대전 직통도로.
1910년대 초 까지도 명색이 도청 소재지인 공주와 신흥도시로 발돋움을 시작한 대전 사이에 도로가 없었다.

고작, 공주에서 금강을 배로 건너 종촌과 대평리를 거쳐야 하는 불편한 길 밖에 없었고 지금 처럼 대전 - 동학사 입구 - 마티고개로 통하는 직통도로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예산이 제일 문제였다. 그 당시 화폐단위로 최소한 87만원이 필요했었는데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길 때 현도청 신축비가 35만원이었으니 87만원이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중양 도장관은 총독부에 여러번 찾아가 교섭을 벌였으며 그래도 결말이 나지않자 데라우찌총독과 만나 결국은 87만원 전액을 타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하여 1912년 3월 대전 - 유성 - 반포 - 공주간 신작로 공사가 착공을 보게 되었다.

큰 하천이 없어 공사는 쉽게 진행된 편이었으나 말티고개를 굽이굽이 넘어가는 길을 뚫는 것이 가장 난공사였으며 그 무렵 이 산에는 많은 화전민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반발이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특히 말티고개 중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터뜨려 화전민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까지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화전민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으며 이 때문에 공사가 1개월 동안이나 중단되기도 했었다.

마침내 1913년 9월 17일 공주 - 반포 - 대전간의 새 도로가 탄생했고 이 도로의 개통은 대전의 발전을 크게 촉진시켰으며 신비 속에 가린 계룡산개발에 크게 공헌했다.

한편 1911년 4월 따스한 봄이 시작되면서 데라우찌 조선 총독은 각 도장관들에게 구형 포드 자동차를 한대씩 사서 보냈다.
그러나 차를 움직일 운전사가 없어 박중양 도장관은 차를 가져다 놓고도 그대로 묵혀두었다가 공주에 살고있던 崔모라는 사람을 서울까지 보내 운전교육을 받게 한 다음 비로소 차를 타기 시작했다.

대전상공회의소장을 지낸 문갑동(文甲童)씨도 이무렵 함께 운전을 배웠는데 崔모씨는 도장관차를 끌기 위해 면허도 따기전에 공주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면허증도 없이 도장관차를 운전한 셈이다. 하지만 문갑동씨는 제대로 운전을 배웠고 면허증도 땄다.

결국 충남에서 운전면허 제 1호는 문갑동씨가 차지했고 이것을 계기로 그는 이 지방에서 처음으로 운수업에 손을 대 크게 돈을 벌었다. 대전 - 공주간 버스를 운행했는데 그야말로 황금노선이었다.
그래서 충남최고의 갑부 소리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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