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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제 첫 '충남도장관'의 엽기 행각

변평섭의 '충남의 옛이야기' 7

2009.06.04(목) | 관리자 (이메일주소:
               	)

  일제 첫  
▲ 일제시대 첫 충남도장관 박중양.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합방하고 나서 10월 1일자로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를 13개 도(道)로 나누는 한편 최고 책임자를 관찰사에서 ‘도장관’(道長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초대 충남도 장관은 친일파로 구한말 이름을 떨치던 박중양(朴重陽).

그는 훈장이 달린 검은 제복에 칼을 차고 카이젤 콧수염을 기른 거만한 모습으로 10월 6일 충남도청이 있는 공주에 부임했다.

도청 청사는 옛 관찰사가 있던 감영을 그대로 쓰기로 했고 도장관실 역시 관찰사가 집무하던 72평짜리 선화당(宣化堂)을 사용했다. 그리고 도장관을 부를 때는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하도록 했다.

박중양 도장관이 부임하자마자 첫 군수회의를 소집했는데 이 자리에서 부여 임천군수 이종열(李宗烈)이 계속 되는 총독부의 토지조사로 민심이 흉흉하니 이것을 중단해 줄 것과 농지의 단위를 종래의 ‘마지기’에서 ‘평(坪)’으로 바꾸면 혼란이 온다는 발언을 했다.

사실 그때 농민들은 순사의 호위아래 살벌한 분위기 속에 농지측량을 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도장관은 버럭 화를 내며,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소!” 하고 퇴장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이종열 임천군수는 해임되었다.
초대 도장관이 부임하여 처음으로 한 일은 군수 모가지를 벤 것이다.

박중양은 재임기간 동안 말썽이 끊이질 않았다.
한번은 군청 통폐합작업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지금의 논산시 은진면 유지들이 도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는 군청이 은진면에 있었는데 논산, 강경, 연무 일대를 통합하여 논산으로 군청을 이전키로 하여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데 은진에서 찾아온 유지들 가운데 한 노인이 상투머리에 갓을쓴 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단발령이 내린지 언제인데 지금 까지 상투를 하다니... 에잇! 다들 나가시요.”
그리고는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박중양도 1914년 8월 1일자로 도 관할구역변경에 따라 충남에 속했던 평택군이 경기도로 빼앗기게 되자 도민들의 원성이 드높아진 데다 친일파의 두목 이완용이 공주에 왔을 때 대접을 잘못해 결국 1915년 3월 31일자로 해임되고 말았다.

5년가까이 긴 세월이었고 그의 공적이라면 처음으로 대전 - 공주 도로를 뚫은 것과 뽕나무를 많이 심은 것.
그래서 그의 별명도 ‘뽕나무’였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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