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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뉴스

동물의 죽음보다 내 머리카락

독자투고

  • 등록일자
    2025.03.07(Fri) 09:19:31
  • 담당자
    도정신문/deun127@korea.kr
  • 독일에서 나는 비건과 베지테리안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 이유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알게 되었다. 


    고기나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에는 동물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동 물의 대량 사육과 도축 그리고 운반되는 동안의 배출되는 배기가스, 먹지 않고 버려지는 고기들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기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단 2유로에 간 고기 한 팩 을 살 수 있는 것은 좁은 우리에 갇혀 생명을 연명하는 소와 돼지 덕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냉동새우는 제3세계 국가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 벗겨진 새우들이다. 새우를 보면 새우를 까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삼겹살 한 팩을 신나게 잡을 수 없었다. 그러는 대신에 나는 차라리 베이컨 한 팩을 사서 서너 번에 나누어 먹었다. 계란과 베이컨 정도가 내가 평소에 하는 유일한 육식이었다. 


    어느 날 나는 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원형탈모가 온 것이었다. 이제까지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것이 나에게 일어났다. 아는 언니가 발견한 원형탈모는 이미 생겨난 서너 개의 동그라미 중에 하나였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더 우수수 빠질 수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처음엔 작았던 원형탈모들이 여기저기에 여러 개 생겼다. 그리고 나서는 커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자리에 있는 머리들도 빠져서 좁았던 이마가 조금 넓어지고 M자 탈모는 아니지만 헤어라인이 매끄럽지 않고 두세 자리가 움푹 파여 들어가기도 했다. 원형탈모가 생기는 게 스트레스 때문이라던데 나는 누군가 내가 탈모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바람이 불어서 탈모를 덮고 있던 긴 머리카락이 날리면 누가 내 뒤통수의 원형탈모를 보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고 원형탈모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만들었다. 나는 매일 내 머리카락 속을 만지며 매끈매끈한 탈모 부분을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 얼마나 진행됐는지 지켜보고 주사도 맞아보곤 했다. 


    하지만 주사는 역으로 부작용을 일으켜 더 큰 원형탈모를 다른 부분에 만들어 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욕심을 포기 하고 그냥 이제 다 빠지면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골고루 영양 섭취하는 것에 집중했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물을 많이 마시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 베이컨이나 간 고기를 가끔 먹는 정도였던 육식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학 때 잠깐 한국에 있었고 한국에서 나는 어떤 고기든 가리지 않고 구워지고 튀겨지고 끓여진 고기들을 섭취했다. 절제하는 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냈는데 그 절제를 푸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몇 달 후가 되어서야 내 머리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솜털같이 자라던 머리가 점점 굵어지고 길어졌다. 그 과정에도 한참이 걸렸다. 


    나는 동물들의 죽음과 내 머리카락을 맞바꿨다. 나에게는 죄책감보다는 사회적인 체면을 완성해주는 머리카락이 더 중요했다. 나는 동물들을 아끼는 척했고 지구를 위하는 척했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 나는 수많은 동물들의 목숨보다는 다시 솜털같이 자라나는 내 머리카락이 더 중요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다시 영양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서 머리에서 열이 나고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나는 제일 먼저 고기를 다시 먹을 것을 생각했다. 역시 아직도 나에게는 동물의 삶 같은 것보다는 머리카락이 먼저인 것이다. 나는 심지어 머리카락과 고기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 요인을 차단하고 샴푸를 바꾸고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가끔 한 덕분에 내 면역체계를 되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가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렸던 것은 육식이다.

     /박수진(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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