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이유 없는 여행을 꿈꾸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곳에 대한 그리움과 낯선 시간과 공간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나기도 하고, 수신자가 없는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가을은 나 자신의 허전함으로부터 깨어나 낯선 곳까지 이어지는 작은 길인가 봅니다. 어쩌면 가을과 여행은 가느다란 실타래 같이 연결되어 바람에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길가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을 보는 것처럼 반갑기도 하지요.
▲ 가을 하늘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도비산은 부처의 세계와 일반인들의 세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산 정상부에는 충남 문화재자료 195호 ‘부석사(浮石寺)’가 있습니다. 천년고찰 부석사에서 산 아래 수도사까지는 800m 정도의 거리입니다. 도비산(島飛山)은 ‘섬 도(島)’,’날아갈 비(飛)'자로 씁니다. 바다 위를 섬이 날아가는 모양에서 도비산(島飛山)으로 했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이 도비산을 오르면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천수만에 그려지는 노을은 호수에 그려지는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도비산 입구에 서있다
도비산이 시작되는 취평리 마을에 대한불교조계종 수도사가 있습니다. 대웅전과 공양간 그리고 요사체로 이루어진 아담한 사찰입니다. 1900년대에 혜선스님이 부석사 뒤쪽에 지었는데, 1987년 수진스님이 지금의 장소로 재건하였습니다. 천년고찰은 아니어도 마을과 가깝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이곳 수도사의 주지인 수진스님은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공양을 많이 합니다. 부처의 미소를 닮은 주지스님의 마음이 음식으로 환생한 것일까요. 곱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산사의 가을을 맞이합니다.
▲ '과일꽃건정과'로 불리는 음식의 모습
▲ 시식용 음식들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다급한 가을의 발자취에 낙엽들이 색감을 잃고 초록의 색으로 길 위에 쌓입니다. 도비산은 아직도 여름의 옷을 입고, 가을 하늘을 이고 있습니다. 초록의 낙엽을 밟고 산사로 이어지는 여름 길은 시몬의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종달새와 참새가 지저귀는 아련한 소리들은 숲의 침묵에 묻혀버려 정적이 흐릅니다. 침묵의 끝은 공허해서 푸르른 하늘만큼 깊고, 깊은 침묵에서 깨어나는 목탁소리가 반갑습니다.
▲ 고요한 사찰의 대웅전 앞에 행사장 안내 표시가 이채롭다
햇빛 좋은 10월 5일 토요일에 ‘2024년 수도사 사찰음식 대향연 문화공연’이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가을날에 ‘사찰음식 대향연’을 만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취평리 마을의 논에는 황금물결을 이루는 벼가 고개를 숙이며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외지인들이 모여서 사찰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작고 아담한 사찰에서 큰 울림과 깨달음을 주는 행사였습니다.
▲ 대웅전 벽면에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다
작은 사찰에 사람들이 500명 이상 모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니 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시작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스님들의 공덕(功德)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 부처님을 닮았습니다. 공기 좋은 산속에서 몸에 좋은 사찰음식을 무료로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까지 모두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대웅전에 있는 불상(佛像)의 자애로운 미소보다, 틀니를 끼우고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미소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오늘은 수도사에 500명이 넘는 부처님들이 향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 모두 차례대로 점심 공양을 하고 있다
▲ 다양한 음식으로 점심 공양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수도사 대웅전 앞 경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공연도 가을과 잘 어울리는 무대였습니다. 사찰에서 가을이면 ‘산사음악회’가 열리는데, 수도사는 사찰음식과 문화공연으로 대향연을 준비한 것입니다. 테너와 소프라노 성악가의 듀엣곡 ‘아름다운 나라’는 천상의 소리처럼 가을의 공기를 울렸습니다. 시인들의 시 낭송은 가을의 풍경처럼 멋들어진 풍류를 자아냈는데 사찰음식과 잘 어울렸습니다. 수진스님의 ‘빛의 향기’, 조지훈의 ‘승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낭송되었지요. 모두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처럼 정겨운 시였습니다.
▲ 대웅전 앞에 공연장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잘 만들기도 하지만,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세팅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의 셰프들이 세계적인 음식점에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선조들의 음식 유전자가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 민족은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보릿고개를 경험하면서 식자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요리를 할 때는 사랑을 가득 담아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음식을 만들 때 ‘내 자식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신다고 하지요.
▲ 종류별로 장아찌가 진열되어 있다
▲ 예쁘게 진열된 음식들
사찰음식의 특징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콩잎장아찌’, ‘신선초장아찌’, ‘멜론장아찌’, ‘감자부각’, ‘애호박두부찜’, ‘단호박구름떡’, ‘대추약편’ 등 밭이나 산에서 쉽게 구하는 식자재였습니다. 특히 ‘과일꽃건정과’는 너무 예뻐서 먹기에 아까울 정도입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 음식의 변화는 유죄라는 말이 실감 나지요. 아이들이 전시용 사찰음식에 손이 자동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 사찰 음식 전시장 모습
▲ 다양한 사찰 음식들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다
살아있는 부처님들의 ‘2024년 수도사 사찰음식 대향연 문화공연’은 이 가을에 좋은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문화공연에는 출연진과 관람객 구분되어 있습니다. 무대의 출연진들은 관람객 숫자에 민감합니다. 관람객들은 무대의 주인공과 출연진들의 공연내용에 민감하지요. 하지만, 수도사의 사찰음식 대향연 문화공연은 모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스님들도 즐기고 방문객들도 즐기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출연진과 관람객들이 함께 식사하고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습에 “아~ 이것이 ‘대향연’이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 대웅전 뒤 편의 사찰 음식 전시장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시식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라는 ‘부사’에 낯설기만 합니다. ‘부사’는 문장의 형용사나 동사를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꾸며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함께’라는 단어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함께할 때는 내 자신을 더 자세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거든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시대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대가족시대에서 소가족시대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은 혼자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는 ‘함께’의 힘을 기억합니다.
▲ 함께하는 아름다운 마음들
▲ 사람들이 사찰 음식을 시식할 수 있도록 진열대가 따로 있다
함께하는 수도사의 향연(饗宴)이 소중한 이유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은 한정되어 있지요. ‘2024년 수도사 사찰음식 대향연 문화공연’은 ‘함께’라는 아름다운 마음을 되살리는 행사였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날, 작은 절 수도사는 크고 웅대한 민족의 자긍심 ‘함께’라는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을 공양한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도민들과 함께 우리 함께 ‘힘센 충남’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대한민국의 힘이 되는 가을여행은 어떠세요?
▲ 수도사의 대웅전 안에 자애로운 불상이 있다
[ 수도사 ]
○ 위치 : 충남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144-2
○ 운영시간 : 상시개방
○ 관람료 : 무료
○ 취재일 : 2024. 10. 05
#가을여행 사찰음식 수도사 문화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