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술당 황진 종가 종택.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창원황씨의 부여 입향과 황신
창원황씨는 시중공파, 호장공파, 공희공파 등 세 개 분파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여 창원황씨의 경우 고려시대 문하평장사(국무총리실 장관급)를 지낸 황석기(黃石奇, ?~1364)를 파조로 모시는 공희공파 계열로, 8세손 황신(黃愼, 1560~1617) 대에 입향하였다.
황신은 1588년 문과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이후 사헌부 감찰(감사원 감사), 전라도관찰사(도지사), 공조·호조판서(장관급) 등 여러 관직을 지낸 선조~광해군 때의 관료이자 학자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 전후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데, 전쟁 시기에 왕세자(광해군)를 보필하면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원접사 이항복을 보좌하였다. 1594년에는 통신사로서 명나라 유격장군 심유경과 함께 명과 일본의 강화교섭에 참여하여 조선의 반대 입장을 전하였다. 이후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호성선무원종공신(1605), 위성공신 2등(1613)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전쟁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특히 남원지역 복구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부사(차관급, 명예직)를 지내기도 하였다. 부여로 내려오게 된 시기는 1601년으로 스승 성혼이 정여립 모반사건 때 무고로 투고된 최영경과의 문제로 비난을 받게 되자 이를 변호하다가 벼슬을 포기하고 부여로 내려오게 된다. 당시 황신의 주요 거주기반은 서울과 강화 일대였으나 부여지방에도 경제적 기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신은 과거시험 소과 입격과 대과 장원급제 그리고 관직에 임명될 때마다 친가와 외가, 처가로부터 축하의 의미로 재산을 분배 받았는데 이 가운데 부여 지방의 토지나 노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종손 황민환씨가 가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일환 선비·유생 체험프로그램 모습. /주식회사 부여전통문화연구회
병자호란에 활약한 황일호
황일호는 황신의 동생인 황척(黃惕)의 아들이다. 그러나 태어난 해 아버지 황척이 세상을 떠나자 큰아버지인 황신에게 입양되었다. 1635년 문과 대과에 급제하여 1636년 사헌부 장령(감사원 차장급)에 임명되었다가 병자호란 일어나자 국왕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척화를 적극 주장하였고, 국왕의 명을 받아 전투를 독려하는 독전어사로 적군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1638년 평안도 의주부윤(의주군수)에 임명되어 임경업 장군 밑에서 활약하였던 의주사람 최효일(崔孝一) 등과 함께 청나라를 치고자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1641년 청나라 사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훗날 송시열 등에 의해 춘추대의를 지킨 충신으로 부각되면서 1711년 숙종은 ‘충렬(忠烈)’이라는 시호와 부조묘를 내렸다. 황일호의 부조묘 사당인 지소사(芝所祠)는 현재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위치하고 있다.
파조 아술당 황진
입향조 황신의 아들 황일호에게는 황윤(黃玧, 1623~1688), 황숙(黃琡), 황진(黃璡, 1634~1666)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 황윤은 1680년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관원(대통령 자문기구)과 승지(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등을 지냈고, 둘째 황숙은 일찍 요절하였다. 그리고 셋째 아들 황진(호 아술당(蛾述堂))은 과거에 뜻이 없어 1665년에 참봉(주무관)에 임명되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후 학문에 전념하면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정진하였으며, 가족들을 거느리고 부여에 정착하였다.
황일호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하다. 일례로 1641년 아버지 황일호가 청나라를 치고자 최효일 등과 모의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사건에 대하여, ‘칼을 움켜쥐고 원수를 갚게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 황일호가 세상을 떠난 이후 학문에 매진하면서도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겼으며, 훗날 효행과 학덕을 높이 평가받아 사헌부 지평(감사원 국장급)에 추증되고 국가로부터 효자정려를 하사받았다. 또한, 자손이 번창하여 부여지역에서의 입지를 견고히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종손 황민환씨(1944~)를 비롯한 황진의 후손들이 문중의 일을 주도하고 있다.
아술당 종가의 제례
아술당 종가의 제례는 크게 황신, 황일호, 아술당과 이하 세대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입향조인 황신의 경우 창강서원에서 매년 음력 3월과 9월 보름에 제향을 지내고, 음력 10월 6일에 시제를 지내고 있다.
황일호의 불천위제사는 지소사에서 매년 음력 11월 8일 자시에 지낸다. 본래 황일호의 장남 황윤의 종손이 주관해야하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황진의 후손들이 모시고 있다. 제례상은 총 5열로 구성되는데, 제주인 청주와 식사류[메·갱·면·편 등], 적과 육회 같은 술안주, 탕, 전, 포, 식혜·반찬류, 과일, 조과 등을 올린다.
차례는 한식과 중양절을 지내고 있으며 오전 11시경에 모시고 있으며, 아술당 이하 선조들의 시제는 종가 근처의 술선재에서 지내고 있다. 최근에는 주말 오전 11시경에 시작한다고 한다.
▲ 황신영정. /국립민속박물관
창강서원에서 선비 체험도
창강서원은 1629년 지방유림의 건의로 입향조 황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이다. 1682년 국가로부터 ‘창강(滄江)’이란 이름을 받아 공인된 사립학교로서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 훼철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황신의 후손들과 지방유림들의 협력으로 1953년에 현재 위치(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 다시 건립하였다.
한편, 최근 부여군에서는 2023년부터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꽃피는 부여 창강에 돌아온 추포 황신’을 시행하고 있다.
부여전통문화연구회에서 주관하며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4월부터 11월까지 3회 진행된다. 프로그램은 3개[창강의 꽃에 담긴 일신우일신, 창강의 선비 청아록에 새기다, 선비의 공부방 문방오우]를 운영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선비·유생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사전예약(https://buyeochr.modoo.at)을 통해서 참여 가능하다.
/서흥석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유교문화연구부장